[황진선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 입법기관, 정부 통제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게 하려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는 승자 독식 구조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이 최다득표자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해 당선함으로써 거대 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30% 안팎의 지지를 얻어 당선하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다. 다른 후보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된다. 평균 사표율이 50%를 넘는다. 사표가 되는 것을 싫어해 당선이 유력한 거대 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도 많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뽑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47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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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독식의 현행 소선거구제… 사표 50% 넘고 민심 왜곡

이런 국회 구성은 국민의 의사, 곧 민심을 왜곡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25.5%였는데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한 의석수는 123석으로 41%를 차지했다. 반면 국민의 당은 26.7%를 얻었는데 38석, 12.7%를 얻는 데 그쳤다. 정당 득표율만큼 국회의원 숫자를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連動形)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현행 우리나라 선거제는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비례대표는 비례대표대로 뽑는 병립형이다. 정당 득표율이 지역구 의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월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 대표제가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고 밝혔다.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도 ‘국회 구성의 비례성 강화 및 지역 편중 완화’를 위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 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다. 비례성을 확대해 다당제를 도입하면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으로 파행하기 일쑤인 국회가 양보와 타협 속에 운영될 수도 있다.

야 3당, 문 대통령 공약인 연동형 비례제 도입으로 국회 대표성 강화 요구

2020년 4월 13일 21대 총선을 1년 3개월 남짓 앞둔 요즈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 투쟁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천막농성을 앞세운 소수 야3당의 촉구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권의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고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연동형 비례 대표제 도입 검토’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장애물이 적지 않다. 내년 1월 안에 지역구 확정을 포함하는 합의안을 도출해 입법 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공직 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은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선거제 아래 혜택 누리는 거대 민주당과 한국당은 소극적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와 정당에 각각 한 표를 찍도록 하지만 지역 득표가 아닌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 정당 의석수를 결정한다. 정당 득표율대로 먼저 의석을 배분한 뒤 지역구 당선자 수가 배분된 의석수보다 적으면 부족 분만큼 그 정당이 제출한 비례대표 후보 중에서 채워준다. 배분 의석보다 지역구에서 더 많이 뽑히면 많이 뽑힌 만큼 초과 의석을 인정해 주지만 비례대표 의석은 주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정당별 배분 의석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더 많은 정당은 직능성, 전문성이 있는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유한국당 역시 연동형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연동형 도입을 검토한다는 데 합의한 것일 뿐이라며 부정적이다. 게다가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할 경우 ‘원포인트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논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100% 연동을 완화한 절충형 권역별 비례제 검토 필요

민주당과 한국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행 선거제도를 크게 손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소수 야3당의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해 보인다. 두 당의 협조 없이는 선거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칙과 명분을 앞세우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전국 단위가 아닌 권역별 비례 대표제와 100% 연동을 완화하는 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선관위원회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6개 권역별 비례제를 권유했다. 호남에서 한국당, 영남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권역별 연동형으로 하되 정당 득표율의 100%가 아니라 일정 부분, 80~50%만 의석을 보장하는 절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국정 혼란을 부를 수 있는 지나친 다당(多黨)화를 막기 위해 이를테면 5% 이상 득표한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하는 ‘봉쇄조항’을 두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2개 정당, 또는 3개 정당이 국회 내 다수 연합을 구성하는 ‘온건한 다당제’를 도입해 통치 가능성과 책임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의원 수 확대는 큰 걸림돌, 의원 특권도 줄이고 비례 공천 민주화해야

의원 수 확대가 불가피한 점은 큰 걸림돌이다.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이 1 대 1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 대 1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만약 지역구 의원이 200명이면 비례 대표 의원은 100명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지역구 의원 수 253명을 크게 줄이려 들면 현역 의원과 의원 지망생들의 정치 생명과 기득권을 빼앗는 꼴이 돼 선거 제도 개혁 자체가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 초재선의원들이 19일 연동형 도입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구 의석 수는 조금만 줄이거나 현행으로 유지하는 선에서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5당이 이미 ‘의원 정수 10% 이내 확대 여부’를 논의하기로 합의했지만 두 거대 정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을 빌미삼아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회피하는 ‘꼼수’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의원 수 확대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국회로 거듭 나는 연동형 비례제의 뜻을 잘 전달하면 국민도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원 1명이 국민 17만명을 대표하는데 스웨덴은 3만명, 영국은 5만명, 프랑스는 7만명을 대표한다고 한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대한 국민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 과도한 세비와 보좌진, 고급차, 넓은 사무실, 면책특권 남용 방지 등과 같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안을 제시해야 한다. 비례대표 상위 후보들을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지도부의 측근이나 특정 계파 인사들로 채우는 구악도 사라져야 한다. 비례대표 공천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

헌정사에 남을 연동제 도입 뜻 널리 알려야… 문 대통령 앞장서야 성공

아직까지 국민은 연동형 비례 대표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몇몇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찬성이 50% 안팎이다. 반대는 그 절반 정도이다.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취지를 제대로 알기만 하면 폭넓은 지지를 보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정당과 국회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소수 야3당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에도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약속한 만큼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권력의 생성 원리와 특정 정당의 집권 가능성까지 바꾸는 선거 개혁이 쉬운 일일 수 없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연동형은 주권재민의 원리를 체화하는 제도다. 정동영 대표는 이번 선거 제도 개정을 제2의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규정했다. 문 대통령이 앞장 서야 한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대로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자, 헌정사에 남을 정치 개혁으로 기록될 것이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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