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2018년을 달군 큰 이슈는 미투와 갑질이었다.

갑질 피해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 후배는 주로 정부 산하기관 이벤트 일을 10년 정도 했다. 그녀가 웬일로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페북에 열심히 올리기에 “너, 세월 좋다”고 했더니 귀국해서 얼마 후 저녁을 먹자 한다. 그런데 얼굴이 해쓱하다. “오라비, 나 회사 끝냈어. 살려고 유럽 간 거야. 아팠거든... 전화로 해도 될 걸 굳이 오라고 하고는 회의 10분하고 돌아가라 그래. 주말에 할인마트에서 카트 한 가득 쇼핑을 하고는 결제하라고 부르고 살롱에서 저들끼리 술을 (쳐)먹고는 새벽 두 시에 와서 결제하라고도 해. 10년간 정말 죽을 것 같았어.”

필자가 그녀에게 “을도 못된 놈 많아. 퀄리티도 안되는데 돈은 꼬박꼬박 요구하고, 뭐라 하면 부패방지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고, 거짓말하고, 합의한 시간도 못 맞춰서 피해를 주고도 나 몰라라 하고...” 짐짓 꼬집었더니 그녀는 “그런 을도 있지. 그런데 갑이 그것 때문에 심장병 앓아? 죽어?”라고 쏜다.

ⓒ픽사베이

한국의 이코노믹 갱스터

한국 기업의 자존심, 삼성전자는 누가 뭐래도 거인이다. 그 삼성전자를 10여 년간 이끈 권오현 회장의 책 『초격차(超格差)』는 리더, 조직, 전략, 인재라는 4가지로 구성됐는데 살벌한 국제 경쟁 시장과 U보트 같은 조직에 선 최고 경영자의 고뇌를 알게 해준 책이다. 그런데 여기에 ‘협력사와 공생’이라는 5번째가 있었으면 진정한 초격차 거인, 삼성전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격차(隔差)가 아니라 격차(格差)라기에 더 그렇다. 이 책을 홀푸드 마켓 CEO인 존 매키가 쓴 『돈 착하게 벌 수는 없는가』 등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 느껴진다.

‘협력사 관리는 부장 정도나 할 일’이고, 회장은 “글로벌 경쟁에 매진하는 게 내 일이지”라고 하면 현장의 갑질 개선은 요원하다. 이런 갑질은 개인과 기업 차원의 폐해만 부르지 않는다. 2차 대전 후 아프리카 등에 무려 1000조원의 돈을 선진국에서 지원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교육을 못 받고 성에 무지하며 기후 때문일까? 아니다. 주 이유는 중간에 부정과 부패로 경제를 파괴시키는 자들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후진국 경제에 치명적인지는 젊은 경제학자 레이먼드 피스먼과 에드워드 미구엘이 공저한 『이코노믹 갱스터』에 잘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책을 보다보면 그것이 아프리카 이야기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이라 하기에는 초라할 정도로 부정과 불신지수가 높은 나라니까. 2018년 10월 말 KBS 시사프로그램인 <명견만리> 주제가 ‘불신 사회 한국’이었다. 한국의 불신 수준은 그리스, 칠레보다 약간 낮을 뿐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대상별로 보면 국회, 대기업, 법원, 언론 순으로 불신 수준이 높았다. 병원조차도 신뢰 수준이 56%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신뢰를 깎아먹는 자들이 이코노믹 갱스터들이고 그 주된 행위가 바로 갑질이다.

제주도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섬이다. 도시에서 엑소더스한 이주민도 최근 10만 명 가까이 늘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생태와 평화의 섬, 박물관의 섬... 그런데 제주도 신문에 한 여성 기획자가 통렬한 글을 날렸다. 공무원들은 기획사를 선정해 놓고는 자신들이 기획, 디자인을 다하며 시민의 세금을 자기 돈처럼 갑질한다. 이메일은 죽어라 답 안 하고 전화로 늘 오라 가라 하고 그들 시간에 맞춰 1시간여를 대기하다보면 내가 너무 초라해진다는 내용이다. 유별난 괸당(혈족) 문화가 있는 제주도이긴 하지만 이런 공무원 갑질이 과연 제주도만일까? 아니, 과연 공무원만 그럴까? 필자는 이에 대해 이미 ‘신 토족사회’의 대두를 쓴 바 있다.

공룡과 지혜로운 구경꾼

영국의 철학자 B. 러셀은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에서 지성과 감성을 배제하고 의지와 경쟁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현대판 공룡’이라고 불렀다. 이 공룡들이 질투와 욕망으로 서로 살육하다가 멸종할 것이므로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 지혜로운 구경꾼들이 ‘공룡들의 왕국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판 공룡과 지혜로운 구경꾼이란 비유가 뜨끔하다. 공룡이 아직 멸종하지도 않았고 또한 보통의 우리는 지혜로운 구경꾼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잃은 N포 세대나 우선주의 갑질과 신 토족(土族) 등의 대두를 보면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러셀은 “자기를 뛰어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주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심 당부를 한다.

영국의 생명경제학자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노동은 인간의 생명이 그 적과 벌이는 투쟁이다... 양질의 노동에는 육체의 힘을 전적으로 조화롭게 다스리기에 합당한 지성과 감성이 필수적”이라고 썼다. 오늘날 노동을 생명의 요소가 아니라 돈으로만 대하는 우리 태도에 1862년에 이미 경종을 올린 것이다. 우연히 이 책을 읽은 간디는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책 한 권”이라고 말했다. 칼 폴라니는 1944년 책 『거대한 전환』에서 우리가 신봉하는 시장경제를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시집 『밀턴』 서문에서 사용)’에 비유했다. 폴라니는 무한한 욕망을 갖고 경쟁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며 악마의 맷돌을 돌리는 시장경제학 대신 환경의 조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적 인간’, 공동체 구성원의 생존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물질적 수단을 제공하는 경제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칼 폴라니가 우려한 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만연한 갑질이 바로 사회적 인간 이념을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에 다름 아니므로.

한 해가 또 간다. 우리 모두 내년에는 악마의 맷돌 대신 지성의 맷돌을 돌리기를! 지성과 감성의 지혜로운 구경꾼이 될 수 있기를!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전 제일기획 AE/ 전 KT&G 미래팀장
저서<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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