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대학동기 송년모임에서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이래도 나라가 괜찮겠냐"고 걱정하며 최근 겪은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시중은행 임원으로 퇴직한 친구가 들려주기를, 자신의 고교동기 몇명이 만난 송년모임에서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교수로 퇴직한 친구가 빅데이터 관련회사를 차리고 1억 원을 차입하려 상담하다 2억 원을 빌리라는 말을 들었다한다. 그만큼 필요하지 않다고 하자 잘못 돼도 20퍼센트만 갚으면 된다해서 2억 원을 빌렸다며 막말로 차입하며 1억6천만 원을 번 셈이니 밥값을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먼저 떠오른 기억은 한 동안 수많은 카페들이 전국 농촌에 생겨났는데, 이는 농산물 시장개방을 앞두고 농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금융을 악용한 사례들이 한몫 거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

또 벤처지원의 광풍이 불면서 IT 거품이 생겼다 꺼진 사태에도 정책금융이 일조를 했고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었다.

정책금융이란 산업합리화 같은 긴급한 현안을 처리할 때를 제외하면 대기업은 지원대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서민가계 안정이나 중소기업 경쟁력강화 같은 지속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 및 기금 등을 동원하여 저리로 융자, 출연, 출자 등의 형태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정책금융에 의한 지원은 민간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고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범위 안에서 수행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금융시장 내 존재하는 신용격차나 정보 비대칭으로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산업부문별 균형발전을 위해 시장기능을 보완해주는 역할로 제한돼야 하고, 궁극적으로 시장기능에 의한 금융으로 발전돼야 지속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책금융에는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대출 등 정책자금대출,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이차보전대출, 기술평가서에 의한 기술금융, 그리고 서민금융 등이 있다.

여기서는 지면제약상 규모나 잠재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기술금융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픽사베이

2014년 7월 금융당국 주도로 시작된 기술금융은 정부가 시중은행들을 적극적으로 압박하여 2018년 10월 기준 163조원에 달하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기술을 보유했으나 담보가 부족한 유망기업을 지원하는데 인색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취지로 창조경제를 부르짖던 박근혜 정권때 도입되었으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도 금융당국이 선호하는 제도라 급성장을 하고 있다.

나이스 등 5개 기술평가회사의 기술평가와 기보의 보증서를 바탕으로 정부의 시중은행에 대한 당근과 채찍이 기술금융의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정기적으로 기술금융지원실적에 관해 시중은행을 평가해 순위를 발표하고, 또 신보나 기보 출연료를 차등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 정부의 압박을 받는 시중은행들은 영업점평가에 이를 반영하여 은행순위를 끌어올리려 무진 애를 쓴다.

최근 예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수익성을 희생하면 보험료를 깎아주겠다”며 예금자 보호란 예보의 취지와 동 떨어진 새로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금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받은 자료에 의하면 무늬만 기술금융인 사례가 많아 금년 상반기 기준 60퍼센트가 담보대출이라 한다. 또한 기업은행의 경우 기술금융 취급이래 부실채권발생액이 1조 2500억원에 달한다 한다.

문제를 살펴보면 첫째 심도있는 기술평가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이 평가 회사나 은행자체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기술평가서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현실을 들 수 있다. 비슷한 보고서를 대량생산한다는 평가다.

은행으로부터의 평가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평가회사에서 은행의 요구에 맞추어 주는 경우도 많다 한다.

둘째는 정부의 압박 하에 은행직원들이 다른 과목의 대출로 취급하려던 대출도 끼워맞출 수만 있다면 형식적인 요건만 갖추어 기술금융과목으로 대출하려는 동기가 크다.

셋째는 소액건수 위주로 취급되다 보니 사후관리와 종합적인 컨설팅제공이 절실한 초기 기술금융차입자에 충분한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기술금융을 악용하려는 사용자들의 놀이터로 전락되기 쉽다.

기술금융의 특성상 초기 유망기업을 발굴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고위험 고수익금융모델이 필요한 분야다. 작은 마진이 주어지는 대출은 수요자나 공급자 모두에게 적합한 모델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정치권 눈치를 보며 빠르고 쉬우면서 큰 성과를 내려한다. 그래서 철저한 준비를 도외시한 채 장기간에 걸친 준비나 지원기반을 차분히 만들어가기 보다는 무리하게 시중은행들을 몰아붙인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기능이 발휘되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간접역할에 머물러야 하고 그런 역할도 일시적이어야 한다.

과거의 실패경함에서 보이듯 정부가 눈을 부릅뜨고 은행을 몰아치는 방식으로는 단기성과만 일시적으로 보이다 큰 부실만 키운다. 더 늦기 전에 차분히 점검할 때이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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