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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의 와이너리에서 하룻밤[이베리아 기행 5]
신세미 | 승인 2018.12.28 05:44

[논객닷컴=신세미] 지난 11월 스페인여행 중 가장 설렜던(?) 일정이라면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에서의 하룻밤이었다. 그 와이너리 건물을 지은 이가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였기 때문이다. 와인은 잘 모르지만 유명 건축가의 건물에서 1박이라니, 여행 계획 때부터 기대가 컸다. 유럽의 와이너리들이 유명건축가와 협업하는 ‘와인-건축 프로젝트’의 현장, ‘21세기 샤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프랭크 게리의 와이너리 호텔은 빌바오에서 130km 떨어진 스페인 북부 리오하 지역의 엘시에고에 위치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리오하는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칸타브리아 산맥의 바위산과 지중해로 흘러가는 에브로강이 습한 무더위와 강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포도 재배지. 19세기 중 후반 극심한 포도나무 병충해로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 업자들이 환경과 토양이 비슷한 인근의 리오하로 몰렸고, 보르도 양조 기법을 보완한 리오하는 레드와인의 산지로 명성을 얻었다.

와이너리가 들어선 작은 마을 엘시에고. ⓒ신세미

와이너리 측은 창립 150주년에 앞서 마케팅을 겸한 기념 사업으로 본사 건물의 신축을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의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21세기 들어 유럽 와이너리들이 와인 시음과 광고같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적 건축 거장에게 와인 창고, 시음장, 와인 샵 등의 신축을 맡겨 와이너리 건물 자체를 적극 마케팅할 무렵이었다.주민 1천여 명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는 ‘꼭 가봐야 할 명소’에 이름이 올라있다. 이 와이너리가 1858년 와인저장고를 짓고 1862년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스페인의 전통 와인 명가지만, 세계적 관광 명소로 부상한 것은 프랭크 게리가 와이너리 건물을 신축한 2006년 이후다.

프랭크 게리가 지은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 호텔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곡선을 드러내며 빛난다. ⓒ신세미

건축가는 1997년 작 빌바오의 미술관처럼 티타늄 판을 주 재료로 화려하고 파격적인 와이너리 건물을 목가적인 포도밭 언덕에 신축했다. 스페인 민속춤인 플라멩코 댄서의 흔들리는 치맛자락에서 얻은 영감을 분홍색 금색 은색의 티타늄 판을 겹쳐 특유의 곡선으로 형상화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비정형의 외관은 기하학적 조각같았고, 시시각각 발색을 달리했다.

엘시에고의 포도밭 속 와이너리 건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9월 말~10월 초 와인 제조 시즌 뿐 아니라 연중 내방객이 끊이지 않는다. 투숙객은 물론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단체 버스를 이용해 와인 투어를 하며, 시음장과 와인 샵을 찾는다.

와이너리 건물 외벽과 식당 내부를 장식한 프랭크 게리의 건물 스케치.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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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가 디자인한 건물은 신축 당시 사무실용이었다가 객실 14개의 호텔로 용도가 바뀌었다. 호텔 객실은 게리동의 14개 외에 추가로 지은 스파동의 29개까지 총 43개. 이밖에 게리의 건물 스케치들로 장식된 레스토랑, 와인 관련 서적의 도서실도 있다. 부속 건물은 포도 씨와 껍질 소재의 목욕용품을 비치한 스파 시설을 갖췄다.

와이너리의 게리 건물과 부속 건물을 연결하는 투명 유리의 통로. ⓒ신세미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객실 내부. 붉은 와인색을 부분적으로 더했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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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며 예약을 서두른 덕에 게리동 객실에 묶을 수 있었다. 숙박료는 이번 여행 기간 중 묶었던 다른 숙소에 비해 2.5~3배 높았다. 숙소는 지불한 비용이 비싼 만큼 넓고 쾌적했다. 객실 유리창 밖 포도밭 뒤로 중세 건물이 보존된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높은 천장, 비스듬히 경사진 벽면, 지그재그 형태의 유리 창문과 꽃 봉우리 모양의 흰 종이 등갓 같은 인테리어 용품도 독특했다. 진회색 대리석 욕실의 빨강 의자가 그렇듯 부분적으로 붉은 와인색이 액센트 칼러였다. 탁자 위에는 금색 그물망으로 덮힌 와인 1병이 서비스용으로 비치돼 있었다. 이 지역 특유의 조생종 포도인 템프라니요를 비롯해 3종의 포도가 혼합된 레드 와인이었다.

150년 전 지은 와인저장고를 비롯해 19,20세기의 건물이 공존하는 와이너리.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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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건물에서 1박하며 누렸던 감동은 다음날 오전 시간의 와인 투어로 이어졌다.

외인 시음장을 거쳐 둘러본 와인 저장고는 와이너리의 150년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박물관 같았다. 19세기 중반 건물인 와인 저장고는 선풍기나 냉장 설비 없이도 연중 섭씨 16도. 두꺼운 돌 벽, 구불구불한 내부구조 덕에 공기 순환이 더뎌 외부 기온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지하에는 와인 제조 첫 해인 1862년 산 이후 지난 150여년간의 와인이 생산연도 별로 보관돼 있었다.

이밖에 프랑스 와이너리를 벤치 마킹한 붉은 줄 무늬의 와인 통이며, 언덕 위의 21세기 첨단 호텔은 19세기 와인 저장고 및 20세기 와인 제조장과 공존하고 있다.

와인 시음장 ⓒ신세미
와이너리 샵에서 전시 판매하는 프랭크 게리의 건축 이미지의 반지와 브로치. ⓒ신세미

2000년대 들어 유럽서 와이너리 마케팅으로 유명 건축가와 공조한 새로운 현대 건축 붐이 일면서 리오하에도 건축 거장이 디자인한 와이너리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 인근에 위치한 ‘보데가스 이시오스’ 와이너리의 건물은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다. 도로에서 차장 밖으로 보이는 와이너리 외관은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흰 알루미늄 지붕이 뒷산과 어우러지며 절묘한 풍경을 이뤄낸다.

이밖에 ‘비냐 톤도리아’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건축가, 이라크 태생의 자하 하디드가 설계를 맡아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의 시음장 및 와인 숍을 선보였다.

스페인 리오하 지역, 또 다른 와이너리 건축명소인 '보데가스 이시오스'. 뒷산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다. ⓒ신세미
‘마르케스 데 리스칼’처럼 비정형의 곡선을 드러내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스페인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과 미국 LA 월트디즈니콘서트홀.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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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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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미  dream0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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