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얼마 전부터 사진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어른, 아이, 어르신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과 많은 세월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나만의 관상을 보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 놓인 공허하고도 텅 빈 의자는 성별과 신분을 따지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기업 직원, 의사, 교수, 청소부... 다양한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나의 말을 듣곤 한다. 7530원의 최저시급을 받는 내가 가장 으쓱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고개 살짝 오른쪽으로 돌려주세요. 촬영하겠습니다. 하나, 둘. 머리 살짝 뒤쪽으로 넘겨주세요.”

대략 30초 정도의 사진 찍는 순간이 스쳐지나가고, 30분 동안 나는 홀로 스튜디오에 앉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많이 성형한 사람이라도 목주름에서 흘러나오는, 그 사람의 나이테는 허구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유일한 진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픽사베이

사람의 얼굴을 보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을 느낄 수 있다. 입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을 보면서 얼마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 왔는지 가늠하고, 대칭이 완벽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평소 음식 먹는 습관이나 걸음걸이, 혹은 자세까지 상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사진관 의자를 ‘진실의 의자’라 홀로 칭하곤 한다.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그 사람의 일대기를 구경하는 일. 사진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만이 그 진실을 습득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허구의 세상에 어울리는 얼굴로 탄생시켜 내보내는 작업을 한다. 악한 인상은 선한 인상으로, 비대칭은 대칭으로, 하물며 딱봐도 싸우고 온 커플의 어색한 기류마저 사랑스럽게 변화시키는 일. 글쓰기를 통해 진실을 외치고, 최저시급을 통해 진실을 숨기는 나는 종종 완성작을 보며 요새말로 현타(현자타임, 욕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무념무상의 시간)를 갖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문득 이 사진관에 세우고 싶은 내 주위의 인물들도 하나, 둘씩 떠오르곤 한다. 날 괴롭혔었던, 이름도 기억 안나는 유년의 친구와 나를 미워했던 누군가. 또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타인의 얼굴을 30분 동안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얼굴을 단 10분이라도 나지막히 바라보던 순간이 있었나’ 하며 스스로를 질타하기도 하고 반성하게 되는 이곳은, 유일하게 이 사회 속에서의 ‘도태’를 신념으로 한 장소가 아닐까.

나는 그래서 이곳을 진실을 ‘허구’로 만드는 곳이 아닌, ‘도태(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림)’를 만드는 곳이라 칭하고 싶다. 나는 그래서 나를… 당신을, 그리고 나의 아버지를 이 사진관 의자에 앉히고 싶다.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