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지난해 3월, 새 학기의 시작. 개강과 동시에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오래전부터 테니스에 관심 많았던 터라 동아리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매일 저녁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부지런히 땀을 흘렸다. 테니스만 열심히 친 게 아니었다. 시험 끝나고 바닷가로 MT를 가는가 하면,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다함께 배달음식 시켜먹는 여유를 누리기도 했다. 종종 바비큐 파티를 열어 친목을 다지는 등,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코트 안팎에서 ‘핵인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2018년이었다.

너무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에 임했나?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 2019년 임원 선출 과정에서 내 이름이 거론됐다. 동아리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회장, 총무, 홍보 역할 중 하나를 내가 맡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올해에도 동아리 주축 멤버로 활약할 텐데, 임원으로 활동해도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얼마 전, 현 임원과 차기 임원이 교대하여 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픽사베이

지난 임원이었던 선배들로부터 인계사항을 전달받았다. 공책에 부착된 수많은 영수증과 세세하게 기록된 각종 지출 내역, PPT 파일로 정리된 발표 내용, 대회 및 행사 준비사항. 숙지할 부분이 어찌 그리도 많던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임원으로서 진행할 첫 번째 행사는 겨울방학 MT.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임원은 며칠 동안 꾸준히 모여 회의를 했다. 한 번 회의할 때마다 한 두 시간 훌쩍 넘기는 건 기본. 언제, 어디에서 만나 무엇을 할지 정하고 숙소와 필요한 품목을 확인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시간, 비용, 거리를 고려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까지 고민, 또 고민. 계획을 다 짠 후에는 임원들끼리 MT 장소를 미리 답사하여 숙소 상태와 동선을 직접 확인했다. 1박 2일 놀러가는 데 이렇게도 세세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니. 짧은 즐거움을 누리기까지 거치는 과정은 길고 힘겨웠다.

회원들은 알까. 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 즐거운 MT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나도 몰랐다. 지난해 회원으로서 참여한 여러 행사에서 신나게 놀고, 먹느라 바빴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행사 이면에서 임원들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을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임원이 되어보니 알겠다. 공동체가 멋대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있기에 조직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여러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오고 있다. 가정, 학교, 교회, 군대 나아가 지역과 국가까지. 과거에는 모든 조직에서 리더가 아닌 팔로워로 살았다. 부모님, 선생님, 목사님, 지휘관의 지도를 따르는데 익숙했다. 이미 짜인 틀 속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마치 우산을 쓴 채 살아온 인생이랄까. 그동안 우산을 쓴 덕분에 비에 젖지 않았다. 함께 우산을 쓴 친구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어서 비 오는 날이 늘 반가웠다. 그 사이 우산이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산이 원래 그 목적으로 있는 거지’, ‘내가 안 젖으면 됐지’라는 이기적인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쓰고 있던 우산을 잃었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자 비 오는 날의 여유, 낭만을 누리는 건 언감생심.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껏 내가 즐겁고 쾌적하게 지내는 동안 누군가가 대신 대가를 치른 사실을. ‘얼마나 오랜 시간을 축축하게 젖으면서 버텼던 걸까?’ 우산을 잃고 나서야, 혹은 내가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고 나서야 숨은 고충에 공감할 수 있었다.

테니스 동아리 회원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것처럼, 점점 나이가 들고 ‘짬밥’이 쌓이면서 리더를 맡을 기회가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앞장서서 여러 사람을 책임지고 이끄는 리더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조금씩 실감한다. 부모님을 비롯해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지도해주신 어른들과 각 공동체 대표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의 삶을 신경쓰고 책임지느라 그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곧 책임감이 커지는 과정. 그렇게 나도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나는 과연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책임질 사람과 일이 많아질 텐데, 그 무게를 거뜬히 감당할 수 있도록 어깨를 튼튼히 단련해놓아야겠다. 새해가 밝았다. 한 살 더 먹은 만큼 나잇값 하는 2019년이 되기를 바란다.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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