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11]

“응, 그래~.”
“당신이 이제 ‘그래’라는 말도 하는구나. 남의 말 죽어도 안 듣던 사람이….”

거실에서 내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고 있던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있었던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이 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응, 그래~”라고 대답하는 자신에게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피식 웃음이 난다. 그 순간 이순(耳順)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자는 나이 육십을 이순이라고 했다. 사람이 예순 살이 되면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육십 다섯이 다 돼서야 귀가 조금 순해지니, ‘늦돼도 한참 늦된’ 인생이다.

ⓒ픽사베이

힘을 빼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제라도 나의 무엇인가가 부드러워지고 있다면 실로 감사한 일이다. 귀가 순해졌다면 그것은 조금씩이나마 마음에서 힘이 빠지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 동안 말라 있던 나의 눈에서 눈물이 회복되고 있는 것도 같은 연유 아닌가 싶다.

‘힘 빼기’의 유익은 일찍이 운동을 통해 경험했던 터이다. 무슨 운동이건 처음 배울 때 가장 많이 듣는 게 “힘을 빼라”는 말이다. 힘이 들어가면 몸이 경직되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지고, 속도와 파워도 줄어든다. 구기운동, 무술 할 것 없이 모든 운동에 적용되는 힘의 역설이다. 그걸 알면서도 힘 빼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내 안에 가득한 욕심 때문이다.

운동신경이 변변치 못한 나는 골프를 할 때 그런 실수가 잦았다. 잔뜩 벼르고 휘두른 골프채가 공은 아예 맞추지도 못하고, 애꿎은 잔디만 파헤치고 만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의 샷에서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욕심이 부른 화라고 자책하며 재발방지를 맹세하지만, 골프인생에 같은 실수는 반복된다.

운동에 요구되는 힘 빼기는 세월이 흐르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하지만 인생의 힘 빼기는 세월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여부가 인생의 성패와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허송세월할 때 치르는 대가가 크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에는 한번뿐인 인생이 너무 짧다.

전에는 지나가는 사람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겔36:34-35)

I’m nothing!

인생의 하프타임에 비로소 힘 빼기를 배운다. 그것은 낮아짐이고 내려놓음이다. 자기부인이고 권리포기다. 매순간 다짐한다. “I’m nothing!” 내가 무언가가 되려고 발버둥 칠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을 본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이따금 자존심 상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서둘러 자신을 향해 ‘권리포기’를 선포한다. 그것은 “적어도 이 만큼은 대접해줘야 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이로써 요동치던 마음이 고요해 지는 것을 경험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이러한 힘 빼기가 내 인생에서 좀 더 일찍 시작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시도를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온전히 죽어야만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힘 빼기를 능가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내 마음과 몸에서 힘을 빼는데 혼신을 다 해야 할 이유다.

이제 마음의 힘을 빼기 위해 내가 죽는다. 평판에 대해 죽고, 경험에 대해 죽는다. 생각에 대해 죽고, 계획에 대해 죽는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그동안 내 몸을 경직시켰던 것들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혀’를 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혀는 곧 불(火)이요 불의(不義)의 세계’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 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꼽았던가. 그것이 종국에는 내 생의 바퀴를 불사르지 않았던가.

내가 죽으니 내 속에 새 생명이 꿈틀댄다. 생기가 들어가니 딱딱하게 굳어 있던 것들이 부드러워 진다. 내 안에서 두려움 불안 근심 걱정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 그곳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온유 절제 같은 신의 성품으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힘 빼기는 하프타임이 준 선물

2019년을 시작하며 자문자답 해본다. 지난 1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이 심플해졌다. 심플한 것은 아름답다. 그렇다고 삶이 너무 단조롭거나 심심해진 것은 아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조정되면서 분주함이 사라진 것일 뿐이다.

이 시즌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힘 빼기’와 함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지치기’다. 집중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른다. 삶의 무게가 줄어든다. 일상이 한결 수월하다. 삶에 자그마한 열매들이 맺어지는 것을 본다.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되찾았다. 아내와의 관계가 더 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첫 번째 열매일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아내가 내게 한 “고맙다”는 말이 앞서 32년간 했던 것보다 많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퇴근길에는 후회와 자책이 많았다. 이제는 감사의 기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일의 무게 중심이 성과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면서 그리 됐을 것이다. 신앙생활도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됐다.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기쁨과 평안을 준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시즌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힘 빼기가 내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기에, 그것이 가능한 자리에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즌이야 말로 내 인생에서 제대로 힘을 빼고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힘 빼기가 가능토록 해 준 나의 하프타임이 새삼 감사하다.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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