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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불확실성[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9.01.03 10:43

[논객닷컴=이영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올 한 해 글로벌 차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충격적인 일이 발생할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생각에 공통된 요소가 있으니 다름 아니라 기대(expectation)다. 기대는 미래에 대한 예상을 통해 현재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어떤 기대를 형성하는가에 따라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영향을 받는다. 자연현상과는 달리 사회현상의 경우 미래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픽사베이

기대는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이나 자신이 만날 상대방의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즉 우리가 기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모든 것이 확실한 세계에서는 기대의 역할이 사라진다. 따라서 불확실한 내일 날씨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이며, 애매모호한 연인의 마음을 헤아려 데이트 코스를 결정하는 것은 애정 전선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반도체 설비라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향후  '불확실한 반도체 경기에 대한 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대는 크고 작은 일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일의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이는 것(observable)보다 보이지 않는 것(unobservable)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기대의 역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입수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대 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최선의 방법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래 전 수렵·채취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의식에 각인된 본성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했던 사람들은 생존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됐다. 불확실성 → 예측(정보 획득) → 기대 형성 → 의사결정 → 행동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직면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가 결정된다. 과거는 기억을 통해, 미래는 기대를 통해 현재에 반영된다.

기대와 관련해 경제학은 다른 분야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물리학이나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철학이나 정치학 등 어떤 분야도 경제학만큼 정교한 기대 이론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분야는 기대를 근본 요소로 포함하는 납득할 만한 어떤 이론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거시적 시스템의 관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이론 모형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만 가지고도 경제학은 개인의 행동과 시장의 작동 방식, 나아가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학은 앞으로도 기대와 관련된 이론 모형을 제공하는 유일한 학문 분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엄청난 변화와 이로 인한 불확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기대와 관련된 경제학 이론 모형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경제학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기대형성 모델이 개발되었는데 그 가운데 지금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 모형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므로 새삼스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이 모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모형에 의하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보유한 정보 및 가격 변동을 관찰해서 얻는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체 체계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반복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이는 합리적 기대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장에서 거래함으로써 시장경제는 언제나 안정된 균형 상태로 수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모형에 의하면 금융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거품(bubble)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론적인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형이 시장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온 이유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저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합리적 기대 모형은 실제 금융시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금융시장은 본질적으로 불균형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복잡계 전문가 마크 뷰캐넌(Mark Buchanan)은 저서 『내일의 경제』에서 합리적 기대 모형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오늘날 합리적 기대 가설은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델 안의 모든 주체가 다른 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는 점이다......즉 사회적 영향이라는 요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모델이 지난 경제 위기의 가능성조차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소로스의 주장이나 뷰캐넌의 비판은 현실의 시장이 보여주었던 증거에 바탕을 둔 것으로 마냥 무시하기 어렵다. 금융시장은 합리적 기대 모형에서 주장하듯이 항상 균형으로 수렴하기 보다는 불균형 상태에 있으면서 때로는 급격하게 변동하는 내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금융위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은 기대형성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 설명력이지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필자가 여기서 특별히 금융시장을 언급한 이유는 사람들의 기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의 기대가 빗나가는 경우 금융시장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동할 수 있다.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2018년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12월 28일 2041.04로 마감했다. 이는 연 초 2479.65와 대비해 17퍼센트 정도 하락한 것이다. 그러면 2018년 초 전문가들이 2018년 주식시장을 어떻게 예측했는지 되돌아보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18년 주식시장이 “상고하저”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대체로 옳게 본 것이다. 2018년 1월 29일 장중 2607.10으로 고점을 형성한 후 하반기로 갈수록 점점 하향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보면 이들의 예측은 사실상 대부분 빗나간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코스피 지수가 3,000 이상으로 상승할 수 있으며 저점도 2,400 근처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평균적으로 예상했던 지수의 변동폭은 실제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투자자들이 전문가의 예측을 감안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예측이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들을 비난하려고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신의 경지로서 누구라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래 예측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예측력을 높이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그런데 주가 예측이나 물가 예측, 그리고 경제성장률 예측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 예측에 상당한 오차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 이를 반성하고 더 나은 예측 방법을 모색하는 태도를 보였던 기관은 거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실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불확실성을 축소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보다 정확한 기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조기에 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는 분명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데 기여할 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기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대와 관련해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불확실성을 확산시키는 행동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 형성과 관련된 보다 현실적인 모형을 개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정부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유념해 정부는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책 불확실성은 정책 효과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예측, 그리고 정책들 간의 모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또한 기업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정부 정책의 효과를 불신하면 할수록 정책 불확실성은 커지게 된다. 이 모든 문제점들은 정부가 고압적으로 정책을 실시하려 한다거나 충분한 내부 검토 없이 졸속으로 시행하려 하거나, 아니면 소통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 더욱 악화된다. 필자는 올해에는 정부가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정책 불확실성을 확산시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음으로 필자는 올해 미래 예측을 시도하는 여러 기관들이 보다 나은 방식으로 예측치를 제시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갖추기를 바란다. 그동안 익숙한 예측 모형을 버리고 새로운 예측 모형을 도입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대부분의 기관에서 사용하는 예측 모형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여러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은행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경제 모형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연방은행은 여전히 동일한 경제 모형을 이용해 금융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최근 단행되고 있는 금리 인상 정책은 기존 경제 모형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른 것인데 또 다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촉발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과거 2000년의 닷컴 버블과 2008년의 금융위기는 연방은행의 적절하지 못했던 금융정책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정확하지 못한 예측 모형이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에 비해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시 주식시장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곧 여러 증권사들이 올해의 주가지수 전망치를 발표할 것이다. 증권사들은 이것을 단순히 연례행사로 가볍게 보지 말고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해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 나은 주가지수 예측 모형을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점은 비단 증권사만이 아니라 예측을 담당하는 기관들, 예컨대 한국은행, 통계청 등 모든 주요 기관들에도 해당된다. 물론 이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확한 예측 모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확산시키고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런 부정확한 예측을 남발하는 행위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올해는 이런 관행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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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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