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누군가가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것과, 그런 누군가가 내게 익숙해져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나는 상대방에게 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란 ‘뻔하다’는 감정이 들 때라고 보는 편이다.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나를 대할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할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상대방에게 별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매일 마주쳐야 하는 상대방이라면 우리들은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사람. 똑똑한 줄 알았더니 허당이네. 생각보다 게으르네. 옷 입는 거 촌스러워. 특정 부분에서 이상하게 허풍을 떠네. 비슷한 레파토리를 너무 우려먹어. 더 나아가면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다. 웃음소리. 제스처. 억양, 표정, 밥을 먹는 모습까지. 마치 사춘기가 들고 나서 할아버지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손녀딸처럼. 대학에 들어갈 때가 되자 이제 아버지께 별로 배울 게 없어보인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아들처럼. 혹은 더 이상 두근거릴 게 없다고 느껴지는 자기 옆의 애인처럼. 갈등은 발생한다. 그리고 관계가 깨지는 발언이 불현듯이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왜 그렇게 살아?”

ⓒ픽사베이

생각없이 들어도 기분 나쁜 단어인데, 나를 그리 만족스럽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단어를 듣게 된다? 후후 파국이다! (feat. 도깨비-박중헌) 그 와중에 돌려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어차피 다들 흔들거리는 관계를 자각했다면 알아먹는다. 서릿발 가득한 냉전과 어색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른 인간관계를 찾는다. 관계를 회복시킬 수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차라리 다른 얼굴을 보는 게 편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니까.

싸이가 ‘New face’에서 낯선여자이론을 들고 와서 노래를 만든 것은 새로운 감각을 느끼기에 가장 손쉬운 대상이 ‘낯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외향과 가치관의 충돌이 있으니 일괄적일 것만 같았던 나의 감정과 일상노선에 약간의 흔들림이 생긴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분된다. 싸이의 곡은 이성을 향한 노래지만 굳이 성별과는 관계없다.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만나는 게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업계 종사자들을 만나는 게 좋다. 어차피 서로가 오래 본 사이는 아니다 보니 상대방을 존중해가면서 가치관을 교환하는지라 상처받을 일은 적다. 다만 이제 내가 기존에 만나던 사람들은 ‘기존 모델’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활동들에 있어서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싸이의 낯선여자이론이 불편하지만 그가 말하는 ‘두근!두근!’이라는 가사가 어떤 설레임의 감정인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나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삶의 전반적인 질을 높인다고 보며, 따라서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좋다 말한다. 거기다 외향적이 사람이 더 행복지수가 높을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 또한 버젓이 존재하는데 굳이 설레임을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는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다만, 그 덕분에 ‘기존모델’로 전락해버린 이전의 모든 관계들을 두고 ‘고루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우려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경계하는 거야말로 굉장히 고루하고 낡아 빠진 말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사람만큼 간사한 게 없다고, 권태기를 겪고서 헤어진 연인은 이후에 보면 뭔가 달라져있어 보인다. (원래 사람은 우울증이 걸리지 않는 한 일정 속도 이상을 유지하며 달라진다. 그저 옆에 있으면 자각을 잘 안할 뿐) 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취업할 때가 되자 모든 집안의 돈 나가는 부분을 다 책임지고 있는 부모가 새삼스레 대단해보인다. (원래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대단했다) 한동안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친구가 토익과 토플, 자격증을 따오거나 내가 해보고싶던 공모전에 입상하면 연락해보고 싶어진다. (그 전까지 친구는 준비하는 중이어서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으니 볼 생각도 안했다) 오타쿠 같은 후배가 언젠가 살을 빼고 과묵해져서 돌아오자 갑자기 괜찮아 보인다.(후배는 이미 당신이 싫을 수 있다. 외모차별을 체감할 테니까)

가족이야 ‘그래도 우리 아들/딸이니까’라는 말로 아가페를 실천하지만 나와 당신이, 우리가 서로 남남인 이상 흥미가 식었다가 다시 흥미를 보이는 게 보이면 불쾌하다. 나는 당신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본인과 이미 틀어져버린 관계를 다시 잇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이제 두 번째 파국을 시전할 거다. “신경꺼. 갑자기 왠 관심이야(친한척이야).”

인간의 권태기는 단순히 연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관계가 유지되는 한 필연적이다. 그리고 권태기 때마다 외면하거나, 헤어지거나, 냉대로 돌변하는 사람들 중에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자기가 이 세상 미모가 아닐 정도로 예쁘고 잘생겼거나, 석유부자면 내가 재고해보겠다.

사람은 다 다르다. 팔 다리 달리고 이족 보행으로 걸어다니는 건 같지만, 성격부터 취향까지 60억 명이 모두 다른 패턴을 갖고 있다. 똑같은 쌍둥이라도 죽을 고비를 넘긴 5분차이 형과 넘기지 않은 5분차이 동생은 성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먹고 나니 자주 보는 사람들을 두고 ‘패턴’을 정해버린다. 뻔한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한다.

예정된 비극을 달려가는 기분은 어떤가. 생각보다 별 느낌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막상 잃어버려야 소중함을 느끼고, 외부의 자극에 예민해져버릴 때서야 기존의 관계들을 찾아가 다시 의지하고, 그 전까지는 무덤덤한 사람들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내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사람 참 간사하지 않은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조교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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