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아Q정전(阿Q正傳)

<아Q정전> ⓒ김호경

변혁에 짓밟혀진 고통의 100년

세계 역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근현대기에 가장 복잡한 역사를 거치면서 처참한 꼴을 당한 나라는 유럽에서는 폴란드이고, 동양에서는 중국(청~중화민국)이다. 물론 나치 독일에게 정복당한 프랑스나 독소전쟁을 치르느라 엄청난 피해를 입은 소련도 처참한 상황에 처하기는 했어도 그 시기는 짧았다. 반면 폴란드는 한때 강국이었으나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오랜 세월 극심한 억압과 수탈을 입었다. 온전한 주권국이 된 것은 사실상 1980년대 후반이라 할 수 있다.

1616년 건립된 청나라는 강희제·옹정제·건륭제의 이른바 강건성세(康乾盛世)가 마무리되면서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1796년에 시작해 1804년에 진압된 백련교(白蓮敎)의 난을 시발로 중국 대륙은 격정의 세월로 접어들어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1976년까지 180여 년 동안 거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백련교의 난-강제적 문호개방-은의 유출과 마약의 성행-아편전쟁-난징조약-영토할양-태평천국의 난-북경함락-제2차 아편전쟁-이권침탈-양무운동-산업화의 태동-청일전쟁-변법자강운동-서태후의 횡포-무술정변-의화단 사건-북청사변-신학문 도입-만주족에 대한 저항-혁명세력의 대두-손문의 활약-신해혁명의 과정을 거쳐 1911년 멸망했다.

지난 5000년 동안 겪었던 변혁보다 더 많은 변혁을 100여 년 사이에 다 겪은 것이다. 그러나 손문이 세운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앞날은 더욱 험난하면 험난했지 평탄하지 못했다.

<아Q정전>을 쓴 루쉰. ⓒ김호경
루쉰이 살았던 옛집. 지금은 루쉰기념관으로 변모했다. ⓒ김호경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회가 혼란스럽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누가 가장 손해를 볼까? 이 어리석은 질문의 답은 ‘가난한 백성’이다. 전란, 반란, 혁명, 전쟁의 시기에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가진 자들이 더 손해를 입는다. 혁명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권력자가 자리에서 쫓겨나고, 사형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한다. 사실 가난한 사람은 빼앗길 것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초가집 한 채가 파괴된다 해도 그리 큰 손해가 아니다. 반면 가진 자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결국 혁명과 전쟁의 시기에는 너나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는 결론이다. 이는 루쉰의 소설 <아Q정전>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아Q는 집도 절도 없다. 직업도 없고, 가족도 없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재산도 없으며, 배짱도 없다. 당연히 글씨를 쓸 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른다. 가장 애처로운 것은 30이 다 되었음에도(당시는 조혼의 시대이므로) 여자와 한번도 접촉을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여승의 머리를 만져본 적은 있다). 그리고 가능성이 –어쩌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여자의 성기를 평생 처음으로 본 남자가 너무 감격해 그 앞에서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독하게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그 남자는 아Q보다 행복하다. 아Q는 부잣집 하녀 우마(吳媽 청상과부)에게 “나하고 자자”라고 엉겁결에 말했다가 온갖 수모를 받고, 지팡이로 머리를 얻어맞고, 그 집 하인에게 사죄하기 위해 술을 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술값을 마련하느라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혀야 했다!
우마는 비록 과부이지만 ‘아Q 같은 놈’과 연분을 맺기는 죽어도 싫었다.

젊은 아씨가 우마를 방밖으로 끌고 나오며 말했다.
“밖으로 나와..... 그러면 안 돼. 자기 방에 숨어서 엉뚱한 생각하면....”

엉뚱한 생각은 자살을 의미한다. 아Q 같은 ‘왕빠단’(忘八蛋: ‘개새끼’ 정도의 욕)에게 “나하고 자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죽고만 싶은 것이다. 하인은 한술 더 뜬다. 그 자신이 하인이면서도, 자신보다 못하다고 업신여기는 아Q를 뜯어먹는 것이다.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그 위의 힘없는 사람이다.

<아Q정전>은 중국의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김호경

혁명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배우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의 말로는 어떻게 될까? 아Q는 마을에서 늘 구박만 받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두들겨 맞는다. 그 상황을 오래 버티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타향으로 가면 출세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뒤 금의환향하면 깔보는 사람이 없어진다.

아Q는 그 전형을 따랐다. 그리고 돈을 뿌렸다. 사람들은 갑자기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아Q가 성공의 비밀을 밝히기 전까지, 그리고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 돈이 떨어지자 아Q는 다시 빌어먹던 옛날로 돌아갔다. 그 옛날이 진정한 옛날이었으면 좋으련만 갑작스레 시대가 변했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태도는 둘 중 하나로 덩달아 변한다. 혁명에 동조해 살아남거나, 거부해서 파멸(죽음)에 이르거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혁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혁명인지, 누구를 위한 혁명인지, 혁명의 주체는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똑똑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를 재빨리 파악해 둘 중 하나를 택해 살아남는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우리의 아Q는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부잣집에 쳐들어가 재물을 훔쳐내는 모습을 멀거니 구경만 하다가 돌아섰다. 그러고는 왜 자신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지 않는지 분통을 터트렸다. 자신도 뛰어들어 재물을 차지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왜?
어리석으니까.
그 어리석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혁명에는 희생자가 있어야 한다. 그 희생자가 권력이 없고, 가족이 없고, 직업이 없는 사람이면 훗날 반혁명이 일어나더라도 후환이 없다.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의 <붉은 수수밭>. ⓒ김호경

동그라미 하나조차

이 소설은 신해혁명이 배경이다. 청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 들어선 대변혁이다. 그 변혁의 과정에서 희생당한 무명의 민초를 그렸다. 그 민초는 “살다보면 어떤 때는 끌려 나가기도 하고, 끌려 나오기도 하는 것”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우리네 삶과 동일하다. 다만, 알 수 없는 문서에 서명을 하라고 할 때 글씨를 쓸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난생 처음 붓을 들고 서명이랍시고 온 정성을 기울여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려 했건만 흰 종이 위에 그려진 것은 수박씨 하나였다. 동그란 인생이 아닌 찌그러진 인생이 된 것이다. 착하고 순수했던 아Q는 동그라미 하나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희생양이 되었다.

소설의 무대 웨이장은 가상의 시골마을이며, 중국 남부의 깊은 농촌이다. “이름 阿Q의 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 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루쉰의 은유법에 감탄할 따름이다. 그 은유법에 의해 아Q가 창조되었고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변혁 속에 매몰된 한 인간의 삶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인지도 모른다.

루쉰의 문체는 유려하고, 박학하고, 강단이 있는 반면 군더더기가 없다. 월장(越章: 문장을 생략하고 뛰어넘는 것)의 부분에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재미가 있다. 영어소설을 번역하는 것과 한문소설을 번역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한자문화권이기에 읽기가 훨씬 매끄럽다.

마지막으로, 아Q의 본명은 아꾸이(阿桂)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아꾸이(阿貴)일 수도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다 부질없다!

펄벅의 <대지>는 중국 농촌의 삶을 그린 명작이다. ⓒ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루쉰의 본명은 주수인(周樹人)이고, 일본에서 의학공부를 하다가 소설가로 전향했다. <아Q정전> 외에 <광인일기>(狂人日記)를 권한다. 산문집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다: 朝花夕拾>도 명작이다.

2. 중국의 근대사, 농민의 삶, 역사의 부침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소설은 펄 벅(Pearl S. Buck)의 <대지>(The Good Earth)이다. 현대 작품으로는 위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가 있다. 한때 바진(巴金)의 작품이 유행한 적이 있었으나 권할 만한 책은 없다. 다이 호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 人!)도 명작이다. 1950년대 이후부터 문화대혁명을 무대로 11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중국 현대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3. 마오쩌둥(毛澤東)에 관한 전기는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 가장 뛰어나다. 미국의 신문기자 에드거 스노(Edgar Snow)가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연안(延安)에 들어가 毛와 직접 인터뷰하고 쓴 책으로 1970~80년대에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이른바 ‘장정’(長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라.

4.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모옌(莫言)의 <홍까오량 가족>(紅高粱 家族)이다. 모옌은 2012년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초들의 강렬한 항일투쟁과 더불어 일본군의 잔학상을 리얼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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