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누구나 공룡 전문가였던 시절이 있었다. 공룡 외에도 꽃, 물고기, 개, 로봇을 향한 집요함 때문에 부모가 자녀를 척척박사라고 착각하던 때 말이다. 그 당시 우리는, 현재 대입 학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이 원하는 인재였다. 그러나 사교육 뺑뺑이를 도는 동안 공룡은 죽어버렸다.

해마다 꿈이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이 많아졌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꿈을 좇음으로써 얻는 기댓값이 마이너스라면, 굳이 꿈을 꿔야 하느냐는 것이다. 학생들은 꿈이 있든 없든, 적당히 노동하고 취향을 소비하는 삶을 선호했다. 그러나 대입을 앞두고 보면 달라진다. 꿈은 대학을 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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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관련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학종은 적폐였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보여주는 집요하고 폐쇄적 분위기가 학종에 대한 평균적 인식일 것이다. 학종이 깜깜이 전형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성평가는 본래 객관적 기준을 규정할 수 없다. 전공 적합도, 창의성, 인성 등의 항목을 만들어 수치화 할 수도 있겠지만, 내신이나 수능처럼 점수로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어서 심사자의 자의성을 원천 차단할 수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자가 자의적으로 합불을 결정하는 것처럼 정성평가가 통용되는 부분이 있다.

공정하지 못하고,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비판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대외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학종을 고수하는 이유가 전형료 수입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전형료 장사를 할 것 같으면 논술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논술은 50:1 안팎의 경쟁률, 수능 최저를 없애면 100:1도 넘어가는 노다지다. 몇 년 전 모 대학은 논술 지원자 80,001명을 입학처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학 입장에서 학종은 신뢰할 만한 전형으로 작동한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대학의 목적은 인재 양성이므로 입시의 목적은 인재 선발이다. 대학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내신은 지역/학교 간 격차가 극심한 현실에서 가장 불공정한 지표이고, 수능은 토익처럼 성실함을 증명하지만 대학 공부 적합도를 측정해내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학종은 대학의 목적을 달성하는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학종이 사교육을 전혀 유발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전형이든 사교육은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나 학종 비중이 정시 비중을 압도하는 와중에도 학종 전문학원이 난립하지는 못했다. 입시컨설팅, 학생부 코디 등의 이름들이 학종에 빨대를 꼽고 있지만 국영수나 논술 학원만 못하다. 눈치 빠른 기존 학원에서 학종을 적당히 돌봐주는 정도가 사교육의 현실이다. 극단적으로, 내신과 점수를 없애고 학종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면, 과연 지금의 국영수만큼 학종 학원이 난립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학종만큼 사교육에서 대처하기 난감한 전형도 없다.

사교육 활용의 애매함 때문일까. 학종은 압도적 선발 비중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소홀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점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내신과 수능에 과투자하며 학종의 막연함에 불안해 했다. 학종을 모르는 예비 고1도 많다. 입시에 민감한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기현상이다.

반문하고 싶다. 국영수는 미친 격차를 선행하면서 학종은 왜 선행하지 않는 것인지. 학종도 선행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학종 선행은 또다른 사교육 유발 요인이겠지만, 공교육이나 가정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화석이 된 공룡을 부활시는 것. 공룡이 부활하면 지금까지 착실하게 말살해온 자기주도성까지 회복된다.

우선 학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소서를 써보는 것이 좋다. 중학생 때, 특정 고등학교나 대학을 가정하고 자소서만 써도 그 효과는 크다. 자소서는 고3 때 사는(buy) 것이 아니라 고1 때부터 사는(live) 것이다. 자소서는 학생부를 기반하여 작성하므로 쓰는 과정에서 학생은 서류 위의 자신의 행적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체감하게 된다. 그 빈 곳이 앞으로 살아야 할 고등학교 생활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서점에만 가도 합격 자소서들이 있으니 비교해 보면 더 좋다.

학종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학생은 스스로 꿈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꿈이 있어야 학생부에 질서가 생긴다. 꿈은 자기주도성을 유발한다는 진부한 말 그 이상의 힘을 가졌다. 내신이나 수능은 꿈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하다. 대입이 종료되면 점수를 채웠던 근의 공식이나 얄리얄리 얄라셩은 무의미해진다.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허탈함을 고3을 살았던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종 준비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다. 수행 평가, 봉사 활동, 독서 기록, 동아리 활동은 자신의 꿈과 연계된 삶 그 자체가 된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향한 자기주도성은 공룡의 시절처럼, 시키지 않아도,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내용을 빨아들여 학교 생활을 꿈에 맞춰 편집해낸다. 이런 학생은 입학 사정관의 눈에도 척척박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다. 학원과 인강에 치여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학생에게 꿈은 가장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학생에게 학종은 옳고 그름을 떠나 직면한 현실이다. 입시 현실 속에서 꿈은 더 이상 낭만적인 소리가 아니다. 자기주도성을 극대화시키는 학종의 심장이다.

한국 교육 문제의 본질은 사교육이 아니라 대학 서열화다. 대학 서열화가 타파되지 않는 한 사교육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학종을 미리 체험하고 목표를 가진다면,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입학 사정관이면 엄마에 의존한 1등 현서를 뽑을 것인가 복수를 위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2등 혜나를 뽑을 것인가? ‘부모도 실력’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대학 수학 능력이 기대되는 것은 엄마 없이도 문제를 해결해 나간 혜나일 것이다. 현서의 신화를 버리고, 화석이 된 공룡을 살려내야 할 때다.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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