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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번 버스[한성규의 하좀하]
한성규 | 승인 2019.01.10 10:50

[논객닷컴=한성규] 807번 버스라고 있다. 울산의 한쪽 끝 석남사 산자락을 내려와 외국인들로 가득 찬 산업단지를 지나간다. 다시 전통 5일장이 펼쳐지는 언양을 지나 울산 태화강 기차역까지 대략 2시간여 걸리는 완행버스이다. 장날이라도 될라치면 이 버스는 언제나 만석이 되고 자리자리, 사이사이마다 온갖 짐들이 쌓인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다양해서 어린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출퇴근하는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 있다. 인종도 다양해서 한국 사람, 중국사람, 백인, 인도인, 동남아시아 사람들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올랐다 내린다.

ⓒ픽사베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큰 짐꾸러미를 두 개나 들고 타는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를 본다. 장날에 물건을 팔러 가는 길일 것이다. 이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행상을 하며 아들딸 자식을 키우며 살았을 테다. 퇴근길에 전화를 받는 아저씨가 있다. 연신 굽신거리며 전화를 받는 모습이 직장상사와 통화하는 듯하다. 이 아저씨는 이렇게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자식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자격증 책을 들여다보며 꾸벅꾸벅 조는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이렇게 힘들게 어른들의 사회라는 곳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양손에 터질 것 같은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있는 외국인이 있다. 봉지 안에는 과자며 채소며 고기 등등 먹을 것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이 외국인 청년은 이렇게 배를 채우며 또다시 자신이 일하는 공장으로 갈 것이다.

807번 버스는 친절하지 않다

버스는 이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교통카드가 안 찍혀서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할라치면 바로 버스 기사의 고성이 날아온다. 키 작은 할머니들은 만석인 버스에서 버스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다. 할머니들이 휘청휘청 자리를 잡기도 전에 버스는 배려 없이 출발한다. 버스가 멈춰 서기 전에 재빨리 뒷문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자기가 내릴 정거장을 놓칠 수도 있다. 정류장을 헷갈려 벨을 눌렀다가 내리지 않는 외국인이라도 있을라치면 저 멀리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의 욕이 날아온다.

빨리빨리와 창의성

한국 사회는 사람들의 희생과 빨리빨리 근성으로 급성장을 했다. 힘세고 바쁘고, 잘나가는 사람들은 신이 나서 질주했다. 대한민국은 질주하는 807 버스처럼 약한 사람, 힘없는 사람, 키 작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급히 출발해서 빨리, 빨리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를 빨리, 많이만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생각 없이 자동차를, 배를 많이 빨리만 만들다가 지금에서야 위기가 왔다고 난리다. 지금 또 생각없이 신나서 반도체를 빨리 많이만 만들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창의력이 핵심경쟁력이 된다고 한다. 창의력이란 것은 돈 안 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돈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주물러보고 했을 때 비로소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도 이제 좀 행복하자

807 버스의 사명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집까지 실어나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하루가 고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버스는 오늘도 만석이다. 운전기사는 오늘도 급출발을 한다. 과속을 한다. 급정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시골길이라고 신호도 무시하고 달린다.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휘청거린다.

5분 빨리 간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밥 한 그릇 더 먹는다고 우리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행복하자, 우리도 이제 좀 행복하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고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버스는 큰 짐과 함께 할머니를 정류장 앞에 내려놓았다. 집은 저 멀리 떨어져 있다. 할머니는 이제부터 큰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굽은 허리를 매만진다. 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급출발을 한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 급정거를 한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도 동시에 휘청거린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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