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신간 ‘피와 뼈의 아이들’을 보고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인간 세계 밖 시공간과 초자연적 존재를 소환하는 판타지 소설과 영화는 인간의 실존과는 거리감이 있다. 보통 인간의 꿈과 사랑과 선악을 담아 위안을 주지만 현실의 아픔이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 대한 갈망과는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그러나 판타지가 현실과 제대로 결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만큼 흡인력이 클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피와 뼈의 아이들’

미국의 신예 작가 토미 아데예미의 판타지 소설 ‘피와 뼈의 아이들’(Children of Blood and Bone, 다섯수레)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버드대 영문과 출신의 26세 여성인 저자는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이다. 그는 선조의 고향인 서아프리카의 신화와 문화에서 얻은 영감을 미국이라는 현실 사회에 접목함으로써 긴장감 넘치는 아름다운 문제작을 냈다. 등장인물이 흑인으로만 구성된 데다 두 소녀가 핵심 주역이니 예전의 판타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설정이다. 저자는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소녀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 신화의 원형을 전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왕의 폭압에 맞서 마법을 되찾으러 나선 흑인 소녀소년들

무대는 오리샤 왕국. 한때 마법을 지닌 사람(마자이)과 지니지 못한 사람(코시단)들이 어울려 평화롭게 살았지만, 힘 있는 마자이들이 마법을 남용하다 빼앗기는 바람에, 지금은 마법을 지니지 못한 왕과 귀족이 폭압으로 다스리고 있다. 왕은 새하얀 머리칼을 지니고 태어나는 마자이의 자손을 몰살해야 왕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폭력과 살육을 저지른다. 그러나 마자이 소녀 제일리와 그의 코시단 오빠 제인, 아버지의 잔인함에 질려 왕궁을 뛰쳐나온 공주 아마리가 함께 마법을 되찾으려 하면서 왕과 맞선다.

‘피와 뼈의 아이들’의 저자 토미 아데예미

“우리에겐 마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일리가 되뇌는 ‘마법이 없으면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거야’가 핵심 주제다. 그런데 마법을 되찾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악에 맞서는 힘,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차별과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미국 사회에서)흑인들이 경찰의 만행 등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 책을 통해 우리도 작게나마 저항의 몸짓을 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목을 끄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에 대해 ‘부자들의 대통령에 맞선, 잊혀진 사람들의 저항권 행사’라고 이름 붙인 언론 보도를 상기할 수도 있겠다.

아름답고 고통스런 마법과 현실의 이름 차용한 환상의 동물들

소설이 마법 없는 현실 세계를 직설적으로만 그렸다면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10여 종의 마법이 나온다. 마자이는 그 중 하나를 부릴 줄 아는 사령술사(死靈術師), 마음술사, 파도술사, 화염술사, 바람술사, 빛술사, 치료술사, 질병술사, 예언술사 등으로 자라난다. 그들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빛, 죽음, 마음, 불, 치료, 예언 등을 불러낸다. 피하기 어려운 위험에 처했을 때 피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소설 속 동물들 역시 환상의 동물들이다. 주인공들이 타고 다니는 양쪽 귀 뒤에 깔쭉깔죽한 뿔이 튀어나온 암컷 사자너 ‘나일러’, 등에 굵고 뾰족한 검은 뿔 여덟 개가 튀어나온 백표버머 ‘룰라’가 그 예다. 검정 퓨마너를 비롯해 치타너, 붉은코 개굴러, 하이어너, 파란엉덩이 비비너 같은 동물들은 낯설지만 현실 세계의 퓨마, 치타, 개구리, 하이에나, 개코원숭이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온다.

절대악이 없는 점이 매력… 주인공들의 애틋한 사랑도 눈길

현실에 대한 저자의 편향된 사고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선악 구도가 뚜렷하지 않고 절대악이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백인 소년과 소녀들이 주인공인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판타지와는 여러 모로 차별성이 있다. 제일리는 마법을 찾으려는 열망 속에서도 누구 하나 마법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몹쓸 마법을 부릴까 봐 괴로워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왕의 아들 이난 역시 마자이들에 의해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방식을 따르면서도 과연 그의 방식이 맞는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머지않아 성인으로 들어설 주인공 4명의 사랑도 애틋하다. 천대받는 하급계층인 제일리와 제인, 가장 고귀한 왕족 혈통인 아마리와 이난은 온갖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적으로 여기던 상대방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다. 과연 주인공들은 마법을 되찾아 왕의 폭압을 끝내고 모든 사람들과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소설은 단초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현실 세계 접목한 스릴러로 전 세계에서 주목

제일리와 아마리와 이난이 각각 자기의 상황과 기억, 심리 묘사로 얘기를 풀어나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며 이해도를 높인다. 특히 속도감 있는 짧은 문체, 고통의 기억과 공포,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구성은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한다. 공포와 서스펜스, 환상 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스티븐 킹이 극찬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 1권이 출간된 뒤 뉴욕타임즈에 무려 43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 31개 언어로 판권이 팔려나갔다. 한국어 번역은 적절하고 간결하다. 20세기 폭스사와 계약한 영화화도 기대를 걸게 한다. 저자는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한복을 입었는데(사진) 좋은 기억으로 남은 나라로 한국을 손꼽는다고 한다. 현재 3권을 집필하고 있다. 2권과 3권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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