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최재황] 폴란드 검찰이 지난 1월 8일 화웨이 중국인 직원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미·중간의 기술절도와 스파이 논란이 점차 다른 나라로까지 확산되는 듯하다. 이전에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체포 되었을 때는 강력 항의했던 중국정부와 화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당 직원을 즉각 해고하고 꼬리자르기에 나섰다.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 의해서 시작됐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제조 2025’를 부르짖으며 2025년에는 세계 제일의 기술국가가 되겠다고 발표한 것이 결국 그동안 쌓였던 미국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현재 중국의 기술력으로 볼 때 2025년에 세계 제일의 기술국이 되는 방법은 기술절도 외에는 정상적인 방법이 없다고 본 때문일 것이다. 선진기업들이 최첨단 고급기술을 이전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트럼트 대통령의 의혹 제기와 대(對)중국 강경정책에 대해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은 모두 전폭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의 기술절도에 대한 미국의 의혹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서 별안간 시작된 건 아니다. 이전 오바마 전 대통령도 중국의 기술절도와 지적재산권 미보호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트럼프와 오바마 훨씬 이전부터 중국의 기술절도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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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개방은 1970년대 등소평에 의해 시작됐다. 하지만 90년 대 초반까지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후진국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으로의 여행이 자유화될 무렵인 90년대 초기. 필자는 중국 수도인 북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경의 호텔에서는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가 도로를 메웠다. 자동차가 적어 도로는 한산했다. 고속도로에서 버스기사가 도로를 잘못 들어왔다며 10여분을 역주행해서 빠져 나오기도 했다. 그 정도로 차가 없었다. 요즘 TV화면에 나오는 평양거리의 자동차 통행모습과 흡사하다. 화장실은 문이 없고 칸막이도 허리춤까지 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호텔을 나오기 전 가장 신경 써서 빼먹지 않아야 하는 일이 화장실 다녀오는 것이었다. 북경을 조금만 벗어나면 SOC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당시 중국은 후진국 중 하나이고 우리나라는 앞서 가는 대표적인 중진국이었다. 이 무렵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은 아시아 시장 진입과 확대를 위한 생산거점을 확보해 운영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 주된 투자대상국은 한국이었다.

다국적 기업은 투자할 때 기업에 대한 정부의 성향과 태도, 전력, 용수, 운송수단, 항만의 수준, 항만에서 공장까지의 도로사정과 소요시간 등 SOC(사회간접자본)의 수준, 근로자의 생산성과 임금, 회사에의 충성도, 노사관계 안정성, 내수시장 규모 등을 주된 검토사항으로 삼았다.

일본은 모든 면에서 좋았으나 임금수준이 너무 높아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전력, 도로, 용수, 항구에서의 이동시간 등 SOC수준, 직원의 충성도, 숙련도, 임금수준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노사관계가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최적의 투자처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중국은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낮았으나 생산성이 낮았다. 전력, 도로, 용수, 항구에서의 이동시 도로상황 등 SOC도 형편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시설과 공장건설 도면을 중국 근로자에게 넘겨주면 복사본이 바로 유출되고 몇달 뒤 유사한 공장이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술절도에 대한 우려였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부 아래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 때문에 90년대 초까지 중국에의 투자는 환경기피산업이나 유출돼도 전혀 문제가 안되는,아주 저급한 기술을 사용하는 수준에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이같은 다국적 기업의 동북아국가에의 투자패턴에 변화를 가져오는 원인을 한국이 제공했다. 80년대 말 들어 극도로 불안해 진 한국의 노사관계가 문제였다. 1980년대말 1년에 1000여건 이상 발생한 노사분규는 90년대 초반에도 연간 백여건 이상씩 발생하고 있었다. 파업이 빈발하면서도 특정 경우에는 장기화하는 경향까지 보였다. 회사대표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모든 것이 아무리 좋아도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파업위험이 상존한다면 그 나라는 다국적기업으로서는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었다. 다국적기업들은 한국의 노사관계가 합리적인 모습으로 바뀌지 않으면 한국 투자를 거두겠다고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한국의 노사관계는 변화하지 못했다. 당연히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에서 투자를 거두기 시작했다.

대안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한국처럼 기술이 보호될 가능성도 없고 직원들의 충성도나 생산성도 낮지만 엄청난 내수시장을 갖고 있었다. 공장가동이 상시 불안한 한국에서 생산해 중국에 수출하기 보다는 중국에서 직접 생산해 판매한다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다국적 기업들의 엄청난 투자가 중국에 집중됐다.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결국 중국이 현재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당시 다국적 기업들이 우려했던 기술유출의 문제도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30여년의 동안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중국경제이고 가장 아까운 기회를 놓친 것은 한국이다.

90년대 초 우리나라의 노조가 협력적인 노사관계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파업을 하는 수준만 되었어도 오늘날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기반을 가진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화장실에 문도 변변히 없던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30년의 세월 동안 모든 기회를 날려버린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변한 것이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국제적 비난을 받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의 근로자는 자국 기업과 정부를 위해 스파이 혐의를 받고 체포되고 있다. 중국 유학생은 모두 스파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듣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민주주의가 보장된 국가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반정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본연의 길인 양 인식하는 듯하다. 귀족노조, 집단이기주의의 발현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올바른 노동운동의 길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재황

 미래사회노무컨설팅 대표

 전 경총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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