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지난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생애 첫 회사를 그만뒀다. 3개월의 수습기간만 채웠으므로 퇴사라고 말하기 애매하긴 하나, 어쨌거나 정규직 채용 조건으로 들어간 회사였다. 운 좋게 입사 한 달 만에 정직원 제안도 받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사직서를 썼다. 퇴직 사유란에 “인턴기간 계약만료 및 이직”이라 적었다. 퇴사는 퇴사였다.

고작 3개월이었다. 대단한 일을 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직장인의 삶을 아주 살짝 맛보았을 뿐이다. 월화수목금 아침 일찍 출근하고 8시간의 노동과 1시간의 점심을 보낸 후 늦은 저녁에야 퇴근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나 역시 일과 사람에 치였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 일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손에 익히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에너지를 단시간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방전돼버렸다.

ⓒ픽사베이

나는 어디서 지쳐버린걸까.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서울숲역 여자화장실 12번 칸에서 숨을 고르고 사무실로 향했다.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다 12층 비상구에서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참고로 나는 숫자 12에 아무런 사심도 없다. 하여튼 나는 출근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거의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혼자만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환경에는 제법 적응했더랬다.

업무는 정말이지 새로웠다.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업으로 삼겠다 다짐한 적은 없었다. 이런 실력으로 돈을 벌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돈을 벌어봤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고,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수집해 글로 정돈하고, “우리 제품에 관심을 가져주세요”를 글로 표현했다. 첫날부터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했던 건 아니었지만 한숨 정도는 쉬었었다. ‘이런 걸 누가 읽어나 줄까?’하면서. 마지막 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부분엔 이 뉘앙스가 맞으니 이렇게 고쳐야겠군.’

남은 답은 하나.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 그렇다. 나는 이것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끝끝내 적응못하고 제 발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도저히 젖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과 굳이 친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지만 적어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는 받아들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어울리지 못했다. 주변을 맴맴 돌기만 하다 더 멀찍이 떨어져 주저앉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지레 겁을 먹은 건지, 겁에 먹힌 건지.

오늘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이 말했다. “취직했다며? 너무 축하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제 퇴사했어요” 웃기라고 한 소리였지만 완전한 팩트였다. 감사한 것도 팩트, 어제 퇴사한 것도 팩트. 뒤늦게 이런 질문이 들렸다. “왜 그만뒀어?” 분명, 이유가 많았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이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엔 충분한 사유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많던 사유는 누가 다 먹은 것인가.

나는 그만 두고 싶어서 그만 둬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걸까.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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