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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아[김우성의 일기장]
김우성 | 승인 2019.01.29 08:30

[논객닷컴=김우성] 외국인 교수님이 진행하는 영어 강의를 들은 적 있다. 하루는 교수님이 나에게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왜 그래? 수업시간에 얼마나 많이 배우는지보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더라고. 얻어가는 게 거의 없더라도 A+만 받으면 만족하나봐?”

교수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수강신청하기 전 해당 수업 강의평을 늘 확인한다. 아무래도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관심 있고 배울 내용이 많은 수업이더라도 A+를 받기 어렵다면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학점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4.5 만점 중 몇 점이냐에 따라 기숙사 입사, 편입, 교환학생, 장학금, 취업 등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지, 고배를 마실지 결정된다. 결국 대학생은 학점으로 말하니 그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다만 씁쓸할 뿐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성장의 크기보다 성적표에 A+가 기록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어쩌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걸까? 얻어가는 게 없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일까?

ⓒ픽사베이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그 때는 오직 대학 입학만 바라보면서 살았다.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감옥 같은 공간에서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청춘을 소비한 날들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3년을 보낸 끝에 교복을 벗었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 걸. 그저 하나의 문을 열고 다른 방에 들어왔을 뿐, 새로운 문을 열어 또다른 방으로 이동하고자 몸부림치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OO만 하면 된다’는 주문을 다시 걸고 있다. 새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힘겨웠던 지난날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데자뷰가 재방송 중이다.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고등학생. 학점만 잘 받으면 된다는 대학생.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오버랩된다. 성적을 내기 위해 육성된 엘리트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왔고,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대가로 일부 선수들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그들은 목표를 달성했으니 행복할까?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무마할 수 있다고 말할까? 그들의 대답이 궁금하다.

엘리트 스포츠를 고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생활 체육을 기반으로 한다. 어린 학생들이 방과 후 운동을 즐기고 어르신도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스포츠가 삶의 일부인 그들. 실컷 땀 흘린 끝에 시원한 음료수 마시면서 도란도란 담소 나누는 여유가 부럽다. 그들의 여유는 ‘금메달 안 따면 어때, 재밌게 뛰어 놀면 됐지’라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대학만 잘 가면, 학점만 잘 받으면, 금메달만 따면, OO만 하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 최선인지 의문이다. 그렇게 희생하고 포기하고 양보했다가 후회가 남진 않을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양보하지 말걸, 좀 더 이기적으로 살 걸’하면서 평생 후회할까봐 두렵다. 천신만고 끝에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클지 모르지만 과거와 현재의 하루하루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기에 눈물과 한숨으로 채우는 건 안타깝다. 현재의 행복, 과정에서의 여유를 중시하는 태도가 사치인 걸까? 내가 아직 세상 물정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로 살고 싶다. 너무 철들어버리면 삶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으니까.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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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kws3f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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