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세상읽기] 국민연금 동원해 대주주 단죄?

[오피니언타임스=최진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을 통해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을 단죄해야 한다고 밝히자 재계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로 얼마전 재벌총수 등 기업인들을 초청해 규제개혁에 나서겠다면서 손을 내밀었던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동원해 대주주를 손보겠다는 발언을 하자 어느 쪽이 진심인지 헷갈린다는 볼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 추진 전략회의'에서 공정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기업의 책임있는 자세가 중요하며 틀린 것은 바로잡고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재계에서는 가장 먼저 대한항공을 떠올렸다. 땅콩회황에 물컵갑질 등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진그룹이 제1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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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은 이미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지속적 공격을 받아왔다. 지난해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진칼 지분을 사들여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린 KCGI 측은 최근 한진그룹 측에 보낸 공개제안서를 통해 사실상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했다.

KCGI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3월 정기주총에서 표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17.7%)을 비롯해 조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28.9%로 1대주주를 차지하고 있고 강성부 펀드는 10.71%로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표대결을 하면 대주주 지분을 이길 수 없지만, 국민연금 지분 7.34%가 강성부 펀드 편을 들게 되면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경우도 한진칼(33.35%)에 이어 2대 주주(11.56%)에 올라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는 취지가 나쁘지 않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임원 선임·해임, 정관 변경 등에 대한 관여를 통해 투자 기업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좋은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민연금을 동원해 어떤 기업이든지 손을 볼 수 있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의심을 받지 않고 순수한 의미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주주가치 훼손을 막아 투자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지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은 정치적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은 주요 부처 차관이 맡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감 있게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구조다.

그동안에는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아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으로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구조일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일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위원들은 과반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는 지난 23일 박상수 위원장(경희대 교수) 등 9명으로 구성된 주주권 행사 분과위원회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했다. 논의 결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는 5명이 주주권 행사를 반대하고,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7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주주의 위법이나 사회적 일탈에 대해서는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법적 처벌과 별개로 국민연금을 동원해 자리에서 내쫓겠다는 발상은 정치의 영역으로 맡겨져서는 안될 일이다.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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