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지난 1998년 고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베네수엘라는 소득 불평등은 심했어도 국민소득 중위권인 나라였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가진 풍부한 석유 자원 덕분이었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와 그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20년에 걸친, 잘못된 사회주의혁명으로 경제적 파탄과 극심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160만%의 초인플레이션에 허덕였는데, 올해에는 인플레이션이 무려 2300만%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또 올해 베네수엘라 경제는 30%나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식량과 의약품을 포함해 모든 물자가 턱없이 부족해 2015년 이후 400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콜롬비아 등 이웃국가로 탈출했다. 올해에도 200만명이 조국 베네수엘라를 떠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으로는 두 개의 의회, 2명의 대통령이 대립하는 분열로 앞날을 점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다.

ⓒ픽사베이

그나마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소득도 꾸준히 오르고 생활 수준도 높아졌다. 의회를 무시하는 등 민주주의 절차를 파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13년 차베스 사후 마두로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버스 운전기사에 노조 위원장 출신인 마두로는 차베스의 후계자답게 차베스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하지만 차베스와 같은 카리스마는 갖출 수 없었다.

여기에 마두로의 취임 후 2014년 국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외화 수입의 95%를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의 외화 수입이 급감하고 석유 생산마저 감소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2016년 5월 총선에서 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의회의 공격이 거세지자 마두로는 2017년 정부의 승인을 받은 인물만 출마하도록 한 제헌의회를 신설하고 야당이 장악한 국민의회의 권한을 빼앗아 무력화시켰다. 마두로 대통령은 국회뿐만 아니라 대법원도 자신을 지지하는 법관들로만 구성하는 등 권한을 강화하는데만 몰두했다. 국회 무력화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몇달 간 격렬하게 지속되면서 11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여전히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합법적인 베네수엘라 의회로 인정하고 있다.

마두로는 지난해 5월 주요 야당 지도자들의 출마를 원천 봉쇄시킨 상태에서 대선을 치러 임기 6년의 대통령에 재선됐고 지난 10일 2번째 임기에 취임했다. 이에 지난 23일 35살의 젊은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 자체가 효력이 없는 것이어서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헌법에 따라 국회의장인 자신이 임시 대통령으로 과도정부를 이끌며 새 대통령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즉각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했고 20여개국이 과이도를 새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마두로는 과이도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직을 찬탈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폄하하고 미국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발표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양분됐다.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 국가들 및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 국가들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 터키, 볼리비아 등은 마두로가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대통령이라며 외부 세력이 베네수엘라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과 과이도 국회의장의 대립 이후 베네수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VOX는 ▲ 마두로의 권력 유지 ▲ 마두로는 물러나지만 그의 이념을 공유하는 새 인물이 마두로의 정책을 답습 ▲ 야당에 의한 권력 교체 ▲ 군부의 정권 장악 ▲ 외국 군사 개입 및 베네수엘라에서 내전 발생 등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마두로가 권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차례대로 외국의 군사 개입 및 내전 발생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VOX는 전망했다.

마두로는 우선 군의, 적어도 고위 군 지도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21일 소수의 군병력이 마두로 축출을 기도하며 반란을 꾀했지만 즉각 진압됐다. 군뿐만 아니라 대법원과 국영 석유회사 PDVSA 등 국가 주요 직책은 온통 마두로를 지지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가 물러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어렵더라도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두번째는 마두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워낙 높아 집권 사회당에서 마두로에 사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20%를 밑돌고 있으며 국민의 80%가 그에 반대하고 있다. 사회당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좌파 사회주의 정책을 유지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얼굴만 바뀔 뿐 사실상 똑같은 정부에 지나지 않는다.

마두로가 국내외 압력에 굴복해 사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 고이도 의장도 지난 24일 마두로 대통령이 사임하면 사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야권에서 정권을 탈환해도 힘겨운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무상 의료 제공과 같은 마두로의 일부 정책들은 국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 이를 위한 지출을 삭감하려 들면 국민의 반발을 부를 게 확실하다. 새 지도자가 누가 됐든 파탄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선 인기없는 정책을 펼쳐야만 한다. 아직은 마두로에 충성을 다짐하고 있지만 정치 위기가 지속되면 군부가 마두로를 축출하고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과거의 군부독재가 되살아나고 부패가 만연하며 사회 안정을 내세워 민주적 가치들이 희생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의 마두로 정권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가능성은 가장 작지만 외국의 군사 개입으로 마두로 대통령이 축출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툼이 일어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각 지역에 패자들이 할거해 국가적 존재감이 상실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앞날을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군부의 향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이도 의장과 마두로 대통령 모두 군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은 최근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가 새 지도자가 되도 베네수엘라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마두로와 과이도 간 대치가 길어질 수록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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