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의 딴생각]

[오피니언타임스=하늘은] 한 아이가 마스크를 건넨다. “아저씨, 요즘에는 공기가 매우 나쁘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렸고 나는 마스크를 부여잡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내 몸을 생각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밥이나 제때 챙겨먹으면 다행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음 배달 장소로 이동한다. 강남의 한 아파트인데 가는 길이 막힌다. 어제는 길을 잘못 들어 2시간이나 허비했다. 초보 택배기사들이 종종 하는 실수라고 하는데 나는 앞으로도 방향을 자주 잃을 것 같다. 내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멍하니 운전하다보면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운전대를 돌려버린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처음 보는 차들이 많다. 이런 걸 두고 외제차라고 하나보다. 누군가 볼까봐 무음 카메라 앱으로 빠르게 사진을 찍어두었다. 어디 가서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휴대폰에 담아서 품고 다니면 돈을 부르는 부적이 되어 나를 도와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늘은

올해부터 대형마트의 택배기사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것을 냉동,냉장, 상온식품으로 분류하여 배달한다. 하루에 40곳 정도를 방문하면 한 달에 260만원(주유비, 식대 포함) 정도 벌 수 있다. 개인 트럭이 있는 분들은 프리랜서 형태로 더 많이 벌어가기도 한다. 나도 나중에 개인 차량이 생기고 길이 익숙해지면 400~500만원씩 벌 수 있다는 희망으로 택배 일에 발을 내딛었다. 이 일을 구하기도 싶지 않았다. 노가다판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분이 택배 일을 추천해줬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일에 도전한 것. 아직까지는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길도 잘못 들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더 많다. 노가다 일이 그립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하지만 이왕 시작 한 거 끝을 봐야할 것 아닌가.

출근 시간은 10시.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하며 동료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기사들에게 물건을 배정하는 분(일명 피커Picker라고 한다)이 식품 상태에 따라 분류를 해준다. 그러면 담당 택배 기사가 자신의 트럭에 싣고 출발하면 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먼저 배달해야 할 물건을 바보 같이 안쪽부터 실어 놓으면 나중에 곤혹을 치른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무생각 없이 순서대로 안쪽부터 채워놓고 출발했다가 첫 번째 방문 아파트에서 모든 물건을 빼내어 다시 실어야 하는 수고를 겪었다.

배달 양을 늘려야 월급도 오르는 법인데 아직까지는 정량도 소화하기 힘든 처지다. 하지만 저 만치 앞서나간 선배들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한 선배는 택배 일이 익숙한 덕분에 새벽 또는 오후에 배달 일을 하나 더 한단다. 그래서 버는 돈이 600~700만원이 된다고 하니 내 가슴까지 설렜다. 집에 외제차 두 대를 모셔놓고 있다는데 그 말이 거짓이라도 좋다. 나도 그저 그와 같이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싶다.

ⓒ하늘은

오늘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귤 상자 하나를 잘못 배달한 탓에 식사 시간마저 놓쳐버렸다. 이럴 때는 편의점 음식이 최고다. 대충 이것저것 골라도 요목조목 다 맛있다. 김밥, 빵, 비타민음료. 오늘은 한상 푸짐하게 결제하고 여유 있게 먹기 시작했다. 밥 한 톨, 뜯어진 김, 빵가루 하나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밥상을 비웠다. 어머니가 보시면 좋아하시려나. 가슴 아파하시려나.

내일은 또 어떤 식품을 어떤 집에 배달할까. 진상을 만나도 좋으니 제 시간에만 꼬박꼬박 배달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일반 사무직들이 겪는 고충은 안 겪어서 좋다. 나에게 뭐라고 하는 상급자도 없고 승진 따위 신경 안 써도 된다. 가기 싫은 회식도 없고 불편한 정장을 입을 일은 더더욱 없다. 몸만 건강하면 정년도 없이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는가. 이렇게 나에게 주문을 외우며 잠을 청해본다.   

 하늘은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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