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진지충.

분위기에 안 맞게 매사에 너무 진지한 태도나 표정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약간의 유머를 섞어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충(蟲)’을 갖다 붙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지충’은 아무리 웃으면서 말해도 결과적으로는 공격적인 ‘멸칭’의 성격을 갖는다.

진지한 벌레라니. 진지함이 죄가 된 시대다.

이왕이면 즐거우면 좋다는 것, 동의한다. 즐거움이 미덕이 되었다. ‘펀셉트’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재미(fun)에 콘셉트(concept)가 더해진 말이다. 얼마나 재미가 있어야 하는지, ‘꿀’과 ‘핵’과 같은 기괴한 접두어까지 동원된다.

문제는 진지충이라는 말을 쓰는 맥락이 참 고약하다는 것. 대개 자신이 정치를 잘 모르겠으니깐, 역사는 어려우니깐, 경제는 설명하기 난해하니깐 상대방의 진지한 이야기를 틀어막고 그 고민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 멸칭을 사용하곤 한다.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한데 휘발성 정보와 연성 기사가 넘치는 요즘, 진지충의 진지함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외려 진지충이 너무 적어 문제다. ‘진지충(蟲)’ 말고 진지함이 충만한 ‘진지충(充)’의 건설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한 발자국 더 진보하는 데 진지충의 역할이 작지 않다.

그동안 세상을 바꾼 건 진지함이었다. ‘진지충(充)’들이 앞장서 열변을 토할 때,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최근엔 유쾌함과 밝음으로 사회의 진보를 견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긴 한다. 다 의미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양자택일할 필요 있는가? 두 가치 모두 소중하다.

유머를 곁들인 이들의 태도를 그저 가볍다고 폄훼해선 안 되듯이, 진지충의 숙론(熟論)을 평가절하하려는 음험한 시도 또한 수용되어선 안 된다.

ⓒ픽사베이

진지한, 그래서 다소 재미없기도 한 엄숙한 그대들이여 고개를 들라.

그대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몸에 맞지 않은 서푼짜리 유머가 아니라, 더욱 심도 있는 진지함이다.

‘진지충(充)’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보자.

 석혜탁

-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저자. 
-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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