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작년 추석에 하버드 나오신 S대 교수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유행했다. 이 분의 글쓰기 강의에는 몇 백 명이나 몰려오고 무려 이 칼럼을 필사까지 하는 분까지 있다고 한다. 주류와는 전혀 동떨어진 삼류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솔직히 0.0001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무려 세 명의 한국인 친구로부터 읽어보라고 카톡이 오는 바람에 읽어야 했다.

첫 번째 추천에는 “고마워”로 대충 대답했지만 두 번째 추천에는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도 “그래.”로, 밥 먹는데 도착한 세 번째 추천에는 정말 제대로 욱해서, 대답 없이 내 칼럼 <백수의 명절 견디기>를 답으로 보내줬다. 전혀 인기가 없는 나는 그의 인기가 부러웠나 보다. 불쌍한 세 번째 친구는 아무 잘못도 없이 조금 늦게 추천의 글을 보냈다는 이유로 내 개소리와 개수작에 대한 생각을 읽어야 했다.

Ⓒ픽사베이

하버드도 못 나오고, S대 교수는커녕 문턱에도 못가 본 나는 내 칼럼이 개소리 취급을 받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헤리 G.프랭크퍼트의 명저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인용했다. 내 글의 요지는 대충이랬다.

개소리에 당하지 말자. 그렇다고 “취업은 왜 안 하니?” 같은 얘기에 “취업은 무엇인가?” 등등의 비슷한 소리로 대응했다간 싸움만 나니까, 자기 스스로 답을 찾고 혼자 미소짓자, 뭐 이런 결심이었다. 어차피 남은 절대로 못 고치니까.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

명절 피난 행렬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인천공항공사가 집계한 올 설 연휴 기간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개항 이후 처음으로 하루 평균 이용객이 2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개소리를 피해서 외국으로까지 대피하는 행렬이다. 특히 3일에는 출발 11만1138명, 도착 10만1894명으로 총 21만3032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한단다. 작년에는 하루 19만377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했단다. 공사는 귀국자들의 편의를 위해 전세버스 30대를 추가 운행하고 공항철도 운행시간도 1시간 25분이나 연장한단다.

이정도면 국군의 1.4 후퇴 이후 국가적 규모의 피난 행렬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공군과 북한군이라는 주적이 없어진 우리는 이제 <전 부치기>를 적으로, <꼴 보기 싫은 남편들>을 주적으로, <오지라퍼들의 개소리>를 최대의 적으로 삼고 있다.

나는 명절이 좋다

나는 명절이 좋다. 물론, 내가 전을 안부치고 꼴 보기 싫은 남편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친척들로부터 개소리 폭격은 당한다. 그래도 나는 명절이 좋다.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오래 살다 온 나는 명절이 그리웠다. 1분에 하나씩 전을 부치라고 해도 좋다. 전 부치면서 같이 한국어로 수다 떨 친척들이 있으니. 앉아서 술이나 홀짝거리면서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이 있어도 좋다. 평소에는 못 보는 친척들이 그렇게라도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니까.

명절은 잘못이 없다

명절은 잘못이 없다. 전 부치는 사람만 부치는 인간관계가 문제지. 명절은 아무 잘못이 없다. 대화는 안 나누고 술과 노름만 즐기는 사람들이 문제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추억하는 의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저것 복잡하고 까다로운 차례 의식이 문제지.

나는 슬프다. <전 부치기>와 <꼴 보기 싫은 남편>, <술과 고스톱> 프레임에 갇혀서 대한민국 땅에 명절이 없어질 것만 같아서.

나쁜 것은 고쳐나가면 된다. 나쁜 점이 있다고 판을 엎어버리는 것은 밥에 콩이 몇 개 들었다고 밥그릇을 아예 엎어버리는 다섯 살 아이 같은 짓이다. 콩이 싫으면 천천히 콩을 집어내면 된다. 콩이 몇 개 들었다고 아예 밥을 엎어버리면 다같이 굶게 된다.

오지라퍼의 개소리에도 허허허

명절이란 무엇인가라면서 명절의 나쁜 점만 들춰내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정의 내리기 해서 행복해지나? 나쁜 점은 싸움을 줄이면서 고쳐나가고 좋은 점은 즐기면 된다. 주적을 만들고 싸우고, 피난 가고, 그렇게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좋은 점만 보려고 하면 명절도 훨씬 즐거워 질 텐데.

나도 아직 멀었지만, 다음 추석까지는 개소리에도 허허허, 하고 웃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올 한해도 노력해야겠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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