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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기[도영인의 정화수]
도영인 | 승인 2019.02.06 11:03

[논객닷컴=도영인] 인터넷상에서만 경험한다고 생각했던 비인격적인 대인관계가 실생활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필자가 버스에 올라탈 때 간혹 운전기사분이 먼저 살짝 목례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듣고도 묵묵부답인 버스기사들이 더 많다. 네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독거가구에서 살고 있는 요즈음, 타인에 대한 무관심 내지 기계적으로 일하는 삶의 패턴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그냥 체념하기에는 점점 더 무관심사회로 가상현실화 하는 크고 작은 사회현상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사회공간에서 현존하는데도 귀한 인격체로서 대접을 못 받고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면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픽사베이

다행히 전철이나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반사회적인 적대감이나 폭력성은 매우 드물고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범죄율이 낮은 비교적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다. 위험한 총기를 아무데서나 휘둘러대는 사람들이 사는 야만적인 나라가 아닌,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런데 기본적인 안전감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연대감 내지 소속감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잘 모르는 타인을 거리에서, 혹은 가게에서 대하게 될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람에게 하나의 인격체로서 관심을 갖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보다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무의미한 존재로 대할 때 그 사회에서 행복감을 나누며 살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길에서 잠깐 스쳐가도 서로 너무나 반가워했었다고 외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아무리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사회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사는 아파트 건물에 있는 승강기에 타는 사람이나 동네에서 아침산책이나 운동을 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서로 간단한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매일 출근하는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부아저씨나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는 식당아줌마와 잠깐이라도 친절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인터넷연결망을 통해서 살맛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집단 공동체의식까지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 가상공동체라는 말 그 자체가 사람들의 감성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인성적인 면에서의 한 사람의 품격은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함으로써 훨씬 용이하게 파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서 얼굴을 보고 악수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SNS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신중한 자세로 공익에 보탬이 되는 의견교환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성격대로 막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쉽게 할 수 없는 말까지도 무책임하게 뱉어낼 수 있다는 익명성을 고의적으로 악용하며 책임질 수 없는 말로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듯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다.

주어진 기계적인 사회연계망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자기 시간을 내어 집단지성을 촉진시키는 의미 있는 공동체 중심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소수그룹에 속하는 것 같다. 모임 정보나 최신 지역소식을 받기만 하고 가상공동체의 기능적이고 건설적인 의사소통이나 참여정신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역사회에서 실제로 만남의 장에 나타나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사람들과 글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SNS는 일종의 자기만족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정 SNS 매체에 글을 올리는 고정 회원일 경우에 그 사람이 쓰는 글을 보면 특이한 성향이나 인품, 그리고 의식세계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나 정보를 스스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나서 자기에게 편리한 결정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는 개인들의 습관적인 반응은 집단지성의 발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가상공동체 내에서까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소위 보수파 사람들과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자기와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확증편향증’ 환자라고 비방하는 글이나 유튜브 동영상들을 접한 적이 있다.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 정보나 뉴스에만 집중하고 상대방을 무조건 설득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전체 공동체의 이익에 대해 고려해 볼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자기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언어를 마구 남용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인터넷상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분위기를 창출해내기는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얼굴을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욕설이나 비방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터넷이 공동체의식을 배양하는데 건설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무한경쟁시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경쟁위주 생활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 성냄, 조급함, 비판을 위한 비판, 편들기를 위한 편들기 등 공동체정신을 해치는 행동패턴들이 SNS상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사람, 양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친척, 반성하려는 기색이 전혀 없는 친구, 가짜 뉴스를 열심히 퍼 나르는 사람 등 자신의 약점을 시정하려고 들지 않는 상대방을 무제한 수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집단들이 한 사회 속에서 안정감과 평화를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의사소통은 사회적 차원의 정의라는 기반 위에서만 지탱될 수 있다.

경쟁문화는 누구나 가진 기본적인 본능에 속하는, 싸워서 이기기를 원하는 경쟁적 잠재성을 부추기기 마련이다. 사회전반에 걸쳐 모든 조직이나 그룹 활동이 경쟁가치 위에 설립되어 있는 현 체제에서 나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가? 그냥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에서조차 우열을 가리고 높고 낮은 점수를 측정하고 패자가 될까봐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는 심리상태를 창출해내는 경쟁중심 문화 속에서 사회 구성원전체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이중구조를 가진 한국 자본주의시장은 로마제국에서처럼 노예화된 전사들끼리 죽을힘을 다해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경쟁의 場(장)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소수사람들만이 우승이나 승리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현 체제 아래에서는 갈등과 심리적 불안감을 구조적으로 악화시키게 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고 학생들의 가치를 상대적 평가점수로 수치화하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수를 받거나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심리상태가 비정상적 현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회에서 공동체정신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경쟁문화 속에서는 개인들이 양보하고 희생한다고 해서 거시적 사회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우분투(Ubuntu)라는 말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라는 의미가 있다. 원래 우리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온 정신문화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사상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사회에는 당신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있다고 생각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사회구조 속에 묶여있다. 경쟁체재 속에서 자신을 밀쳐내고 진급한 동료의 기쁨을 같이 나눈다거나 자기 자식을 밀쳐내고 우등을 하거나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다른 집 아이를 자기자식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한 일로 남아야 하는가?

너무 어렵기만하고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 홍익인간사상을 좀 더 실천가능하게 하는 생활전략은 없는 것인가?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집단의식수준의 사회변화를 촉진시키는 한 가지 구체적 전략으로서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기”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나보다 혹은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보다 훨씬 좋은 위치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를 부러워하거나 심지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무조건 눈 딱 감고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기”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사촌이 집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이제 정신문명 중심의 사회발달이라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인 의식구조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의 의식세계를 바꾸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습관화시키다 보면 경쟁구조의 불합리까지도 제도적으로 한 문제씩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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