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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의 죽음은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
김호경 | 승인 2019.02.08 14:47

2100년 전의 전술을 모방하다

알프레트 폰 슐리펜(Alfred Graf von Schlieffen)은 독일의 장군이다. 그는 부족한 병력으로 우세한 적을 포위하여 전멸시키는 것을 전략·전술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가 모방한 사례가 칸나이 전투(Battle of Cannae)이다. BC 216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은 이탈리아 남쪽 칸나이에서 5만의 군사로 8만의 로마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로마군이 7만 명의 전사자를 낸 것에 비해 카르타고의 전사자는 6천 명에 불과했다. 슐리펜은 이를 현대전에 응용해 독일이 1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이름을 딴 ‘슐리펜 작전’(Schlieffen Plan)은 러시아와 프랑스와의 양면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즉 1)러시아는 개전 후부터 전병력을 동원할 때까지 6~8주가 소요되므로 소수 병력만을 보내고, 2)그동안에 모든 병력을 서부국경에 집중시키고, 3)벨기에를 침범하여 프랑스 북부로 들어가 프랑스 주력군을 동부로 몰아넣고 전멸시킨다. 4)이처럼 서쪽을 안전하게 해결한 다음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싸운다는 작전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 듯했지만 영국을 방어하는 전략이 없었으며, 총력전을 치를 준비도 부족했고,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참전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1914년에 2100년 전의 전술을 모방한 것은 어리석은 전법이 아닐 수 없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전쟁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작이다. ⓒ김호경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알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죽이면서 시작되었다. 독일·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국으로 나뉘어 처음에는 유럽의 전쟁이었으나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뛰어들어 역사상 최초로 세계전쟁이 되었다. 이는 세계를 움켜쥐려는 독일과 영국의 대립, 알자스로렌 땅을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의 반목, 발칸반도에서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충돌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전쟁이었다.

그리하여 서부에서는 스위스 국경에서 북부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 해안까지 뻗은 전선이 형성되었고, 동부에서는 발트해 리가만(Gulf of Riga)에서 흑해로 이어지는 전선이 만들어져 지루한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흔히 말하는 서부전선은 독일과 프랑스의 대결이다. 독일은 슐리펜 작전에 따라 벨기에를 돌파해 프랑스에 침범했으나 마른 전투(Battle of the Marne)에서 패하자 일단 진격을 멈추었다. 겨울에 들어 독일군과 프랑스군은 참호를 깊고 길게 판 다음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서로를 마주보면서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참호전(塹壕戰, Trench Warfare)에 돌입한 것이다.

이가 수백 마리나 있다면 한 마리씩 죽이는 게 퍽이나 성가신 일일 것이다. 이 녀석은 좀 단단해서 손톱으로 꾹꾹 눌러 죽이려면 시간이 한없이 걸려 지겹기 짝이 없다. 그래서 구두약통의 뚜껑을 철사로 묶어 불타는 양초 위에 올려놓았다. 이 통에 이를 집어넣어 탁, 튀는 소리가 나면 죄다 끝장이 난다.

적을 사살시키는 과제보다 이를 잡아 죽이는 과제가 더 중요하고 긴박하다. 특별한 공격도 없고, 특별한 방어도 없었기에 승패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규모 사상자도 없었으며, 특이한 징후도 없었다. 그래서 전선 사령부는 거의 매일 ‘Im Westen Nichts Neues’이라는 전문을 군 본영에 보냈고, 군 본영은 그 전문을 받아 언론에 배포했다. 신문은 그것을 받아 ‘Im Westen Nichts Neues’라 보도했다.

Nichts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고, Neues는 ‘새로운’이라는 의미다. 즉 “서부전선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뜻이다. 레마르크는 이 제목을 사용해 전쟁 소설을 집필해 일약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Im Westen Nichts Neues는 영어로 All Quiet On the Western이라 번역되었다.

레마르크는 1차대전에 직접 참전한 반전(反戰) 작가이다. ⓒ김호경

전쟁만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을 그린 영화는 무수히 많다. <진주만>, <미드웨이 해전>, <도라도라도라>,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새벽의 7인> 등등... 감추어진 작품까지 찾아낸다면 1,000편이 넘을 것이다. 그러나 1차대전 영화는 드물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갈리폴리>가 대표작이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꼽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유럽의 전쟁보다는 중동의 역사, 풍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이유는 1차대전이 2차대전보다 더 멀고, 당시 풍광과 상황을 재현하는 일이 더 어렵고, 극적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1차대전은 2차대전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각 나라들의 세계적 연관이 밀접하고 폭넓게 확대된 것이 첫 번째이다. 여기에 덧붙여 영국의 역사 교수 피터 심킨스(Peter Simkins)는 <제1차 세계대전: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서 1차대전은 여성의 노동시대를 열었으며, 그 결과 남녀평등 시대가 시작되었고, 획기적인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으며, 지구상에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가의 출현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과학과 기술, 인적·물적 교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꼭 그 방법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고 신세계를 열 수 있다. 헨리 포드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전쟁에서 죽은 무수히 많은 청년들 중에는 만일 살았더라면 스티브 잡스를 능가하는 창조성을 발휘한 천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런 행운을 주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학도병들이다. ⓒ김호경

책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학도병(學徒兵)은 학업을 중단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고등학생 이하의 병사를 일컫는다. 전쟁이 길어지고 참혹해질수록 학도병이 증가한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학도병은 ‘학도의용군(學徒義勇軍)’이라 일컫고,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집된 한국 학생은 ‘학병(學兵)’이라 말한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은 학병으로 끌려갔으나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업적을 지니고 있다. 그의 회고록 <장정>(長征)은 그 과정을 담은 책이다.

파울 보이머는 담임선생 칸토레크의 설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세에 학도병이 된다. 학교 친구들인 알레르토 크로프, 뮐러 5세, 레이도 동반 입대한다. 뮐러는 교과서를 끼고 다니면서 참호 속에서 물리학을 공부한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마음은 보이머도 똑같다.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기 방에 앉아 넋두리를 한다.

책들은 책꽂이에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아직 잘 알고 있으며 그 책들을 어떻게 배열했는지도 기억이 난다. 나는 두 눈으로 책들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나에게 말을 걸어다오. 나의 마음을 받아들여다오.”

과연 보이머는 다시 책들을 만날 수 있을까? 뮐러 5세는 물리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을까? 서부전선에 이상이 없다면 그들의 생명도 이상이 없다는 뜻 아닐까?

그러나 전쟁은 낭만이 아니다. 전쟁영화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금발의 아리따운 적국 여자와의 사랑이나 간호장교와의 로맨스는 완전한 허구에 불과하다. 1차 대전은 독일이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과 휴전을 맺으면서 종결되었다. 전사자는 9백만 명이다. 4년 동안 하루에 6,200명씩 사망한 것이다. 그 6,200명에 끼지 않으려 발버둥을 쳐야 한다. 그래야 서부전선이 이상 없으며, “나의 안녕도 이상이 없다.” [논객닷컴=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는 1898년 독일에서 태어나 1914년 1차대전에 참전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집필(1929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에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1970년 타계했다. 1946년, 2차대전을 배경으로 또 다른 전쟁소설 <개선문>(Arc de Triomphe)을 썼다. 이 작품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더 뛰어나다.

2. 전쟁소설은 노만 메일러(Norman Mailer)의 <나자와 사자>(The Naked and the Dead),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인간의 조건>이 걸작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집필해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운데 가장 의외의 인물이다. 이 책은 처음에 6권으로 간행되었으나 지금은 2권으로 편집되었다. 2차대전의 처음과 끝을 알 수 있는 역작이다.

3.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And Quiet Flows The Don)은 러시아 백군 대 적군의 대결을 그렸다. 두 책을 읽기 전에 스페인의 현대 역사, 러시아의 근대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4.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는 나폴레옹 침공에 저항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사건의 전개도 복잡해서 독파하기가 어려운 소설이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5. 한국 작품으로는 베트남전을 리얼하게 묘사한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을 추천한다. 번역가로 이름을 날린 안정효의 <하얀 전쟁>도 베트남전이 무대이다.

톨스토이 ⓒ김호경
헤밍웨이 ⓒ김호경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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