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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습유의 선진국’ 고구려[김부복의 고구려POWER 13]
김부복 | 승인 2019.02.12 10:41

[논객닷컴=김부복] 길에 떨어져 있는 두툼한 지갑이나 손가방을 슬그머니 챙긴다면? 당연히 처벌받을 수 있다. ‘점유이탈물횡령’이다.

그렇더라도 굴러 들어온 떡을 놓치기 아까운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인지, 남들이 길에 흘린 손가방이나 신용카드를 슬쩍했다가 망신당하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도불습유(道不拾遺)’라고 했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좋은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이다.

나라가 ‘도불습유’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이 경제적으로 넉넉할 필요가 있다. 쪼들린다면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그대로 둘 리가 없다. 슬그머니 챙길 것이다.

국민의 도덕의식도 높아야 가능할 수 있다. 아무리 법이 엄격하더라도 도덕의식이 없으면 남이 보지 않는 틈에 냉큼 집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도덕의식이 높으면 오늘날 기준으로 ‘선진국’이라고 할 것이다. 그 선진국인 ‘도불습유’를 이룩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정책적 노력을 들여야 했다.

ⓒ픽사베이

전국시대 때 상앙(商鞅)이 진(秦)나라 임금 효공(孝公)을 찾아갔다. 상앙은 원래 위(衛)나라 귀족 출신이었는데, 몰락하는 바람에 효공을 찾아간 것이다.

효공은 상앙을 ‘면접’하고 나서 쓸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 부국강병책을 맡겼다. 정권을 잡은 상앙은 농민에게 황무지 개간사업부터 밀어붙였다. 그 개간된 토지에서 세금을 거둬들였다.

상앙은 그러면서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다. 이른바 ‘변법(變法)’이었다. 부자나 형제가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하게 했다. 아들이 2명 이상이면서도 분가시키지 않는 집에는 세금을 갑절로 매겼다.

세금이 늘어나면서 재정이 튼튼해졌다. 국력도 따라서 커질 수 있었다.

상앙은 연좌제도 실시했다. 농민을 몇 가구씩 묶어 법을 어기면 서로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신고한 사람에게는 적의 목을 벤 것과 같은 상을 내렸다. 법이 너무 엄격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물론이고, 법이 좋다고 아부하는 사람까지 변방으로 쫓아버리기도 했다.

10년이 지나자 나라가 달라졌다. 집집마다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길에 떨어진 것을 줍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다. 상앙이 잘 먹고 잘사는 ‘도불습유’의 나라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정(鄭)나라 때 재상 자산(子産)은 임금 간공(簡公)의 신임을 받아 정치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집권한지 5년이 흘렀더니 도둑이 자취를 감췄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

복숭아나 대추 등 과일이 무르익어 길거리를 덮었지만 누구도 따 가지 않았다. 송곳같이 하찮은 것을 잃어버려도 사흘이면 되돌아왔다.

자산은 상앙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5년 사이에 태평성대를 달성할 수 있었다. 자산이 잘 먹고 잘사는 ‘도불습유’의 나라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5년이었다.

공자는 56세에 노(魯)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공자의 영향력은 남달랐다. 나라 구석구석에 영향력이 미쳤다.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물건을 사고 팔 때 속이는 일이 없어졌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게 되었다. 남녀 간의 문란한 행동도 사라졌다.

공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3개월 만에 ‘초고속 태평성대’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도불습유’를 목표로 했는데, 애당초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나라가 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구려가 그랬다.

“고구려는 법이 엄해서 사람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남의 나라 칭찬하는데 인색해서 ‘법이 엄하다’고 표현했겠지만, 고구려는 ‘선망의 대상’인 나라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용어로 ‘선진국’이었다.

‘선진국’ 고구려 사람은 중국에서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접받을 만큼 학술, 사상 등 여러 면에서 앞서 있었다. 북위의 수도 업(鄴)에는 고구려에서 온 사람 등 37만 명과 기술자∙예술가 10만 명이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북위에서는 각국 사신이 머무르는 숙소를 두었는데, 고구려 사신이 남제 사신 다음으로 2번째였다. 하지만 장수왕 77년(489)에 남제 사신이 북위에 도착했더니, 자신을 고구려 사신과 같은 자리에 배치하고 있었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듯, 고구려도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시조 추모왕은 ‘천제의 아들(天帝之子)’ 또는 천제를 대행하는 ‘해와 달의 아들(日月之子)’이었다. 따라서 그 백성은 ‘천손민(天孫民)’이었다. 고구려의 천하관은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업적이 황천(皇天)에 달하고 위력은 사해(四海)에 떨쳤다”고 했다.

대륙의 정치 상황이 불안할 때마다 많은 중국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선진국’ 고구려를 찾았다. 고구려는 그들을 포용했다.

참여정부 때 정부의 어떤 고위 인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우긴 적 있었다. G20 정상회담 때 이명박 대통령은 ‘G20세대’라는 용어를 ‘창조’해서 “21세기 글로벌 이슈를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섰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어렵게 턱걸이해서 3만 달러를 넘어서기가 무섭게 또 나오는 얘기는 ‘30-50 클럽’이다.

그러나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우겨가지고는 먹혀들 수 없다. 코웃음이나 돌아올 것이다. 선진국에게 인정받아야 ‘진짜’ 선진국이다. 

김부복  bel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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