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불과 스무 두어살을 먹은 내게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달라며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열에 아홉은 모두 소재만 다른 자신의 연애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있었을 어느 스무 두어살의 연애를 기억하는가.

대부분 2년 정도 사귄 친구들은 모두들 ‘권태기’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권태기는 20여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 언제부터 어색해졌는지도 모른 채 점점 멀어져가는 무언의 감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저 성격이 조금 달랐을 뿐이고, 누군가는 말이 조금 많고 누군가는 말이 조금 없다는 것일 뿐. 그냥. 정말 그냥 멀어졌다는 말 말고는 권태기를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무살을 지나온 누군가에게는 풋내기 같은 어린 고민일 수도, 결혼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추억의 어느 작은 조각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의 이런 스무살 남짓의 추억을 가진 사람이 가끔은 부러울 때가 많다. 결혼과는 아직은 거리가 먼 나이이기에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상처받고, 오래 만나면 권태기가 찾아오는 ‘연애’라는 이 어려운 행위는 끝을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무어라 내릴 수 없는 스무살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연애란 결말이 없는 동화와도 같다. 엔딩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지나온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것이 새드엔딩이건, 해피엔딩이건 미련 없이 웃고 울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경험한 연애는 축복받았다. 

ⓒ픽사베이

고은 우리에게 엔딩이라는 것이 있을까. 
장원 그게 어떤 엔딩을 말하는 건데.
고은 모르지, 아무도.. 해피엔딩일수도, 새드엔딩일수도......
장원 엔딩이 있다는 것은 어쨌든 끝이 있다는 것이네.
고은 열린 결말만큼 무책임한 끝도 있긴하지.
장원 그게 어떻게 무책임한 끝이야. 각자가 원하는 길로 상상하는 자유로운 끝이지.
고은 그게 문제지. 각자가 원하는 상상에 맡기는 것. 결국 우리의 연애가 각자의 연애로 끝마쳐지는 것이니까.

모든 것이 미숙한 스무 남짓의 나는, 그저 엔딩을 가진 당신이 부럽다.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