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내가 돈맛을 알기 시작한 것은 5~6세 때로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항상 설날은 추석보다 수입이 짭짤했다. 그런 내가 올해로 38세가 되었다. 항상 외국 나이로 생각해서 30대 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40에 가까워지다니.

2019년도 어김없이 설날은 찾아왔다. 이번 설날에는 누가 뜬금없이 나에게 세뱃돈을 내밀었다. 40줄에 든 나에게. 나도 한동안은 어리둥절했다. 이거 뭐지? 옆에 있는 조카한테 대신 전해주라는 건가? 우리 둘은 한동안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말이 없었다. 나에게 주는 돈이 확실했다. 이거야말로 대한민국 전통의 미덕의 하나인 상부상조 아닌가? 내가 언제 정신 차리고 직장 잡아서 그 돈을 갚을지는 모르지만.

38세에 세뱃돈을 받고 어디에 쓸지 생각을 한참 생각해 보았다. 확 술을 먹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허투로 쓸 수는 없었다. 합리적으로 소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백수가 된 내 수입과 지출을 한번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백수가 된 이후 수입의 변화

먼저 통계청의 자료를 참고했다. 2018년 4분기 기준 대한민국 1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1.5% 늘어난 169만원이었다고 한다. 전년도 내 수입은 당시 뉴질랜드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자면 월 실수령액이 300만원이 조금 넘었다. 그에 반해 백수가 된 내 현재 수입은 정확히 15만원이었다. 여기저기 글을 써서 받은 돈이었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전년 대비 95% 줄어든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졸지에 깡통을 찼다고 해야 하나.

아차, 10년간이나 일을 하면서 모아둔 돈을 집어넣은 <벨류 고배당 증권자투자신탁>과 <통 중국 고배당 증권자투자신탁>을 빠뜨릴 뻔했다. 이 두 녀석은 내 피 같은 돈을 까먹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 이런 상황을 빼도 박도 못한다고 하나. <벨류>라고 이름만 붙었지 날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놈들, <신탁>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했지 믿을만한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

백수가 된 이후 지출의 변화

우리나라 평균 1인당 한달 지출액은 177만원으로 소득보다 8만원이 많았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나타난 한달간 지출 항목을 봤더니 식비가 지출 항목 1위로 71만원, 용돈 및 경조사비가 2위로 66만원, 교통 및 통신비가 38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나머지는 집세나 각종 공과금, 취미생활이 뒤를 이었다.

내 한달 지출액을 살펴봤다.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달랑 3만 2천원이었다. 작년까지의 소비액은 계산해 본 적이 없어 비교가 불가능했다. 먼저 한 달 식비가 1천 750원이었다. 내 참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 놀라운 식비 지출의 1등 공헌자는 어머님이었다. 나는 고맙게도 그저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얻어먹고 있었다. 어머님은 손이 크셔서 원래부터 버리는 음식이 많았고, 우리는 예전부터 잔반 처리반으로 두 마리의 개를 키웠다. 지금은 한 마리가 고령으로 돌아가셔서 내가 그 개의 역할을 잠시 대신하고 있다. 어디 나가면 점심은 사 먹어야 하지 않냐?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다닌다.

겨울에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을 때 손이 좀 시린 것이 문제다. 벤치가 없어 길거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을 때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가는 것도 좀 문제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이 1천 750원의 세부내역이 궁금해서 조사를 해봤더니 편의점에서 사용한 금액이었다. 여기저기 글을 써주고 문화상품권이나 편의점 상품권을 받았는데, 5천 원짜리 상품권을 쓰고 음료수를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차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던 것이다.

용돈 및 경조사비는 0원이었다. 말할 것도 없는 것이 결혼식이나 이런 행사에 초청을 받은 적이 없고, 통계청 자료에 용돈 항목이 있는데 나는 써 본 적도 없고 어른에게 이 용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교통, 통신비 지출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했다. 교통비로 자그마치 1만 6천원이나 쓴 것이다. 이건 내 총 지출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더 걷기로 결심했다. 사실 나는 이미 많이 걷고 있었다. 모 앱에서 만보를 걸으면 10원씩 시각장애인들에게 기부하는 좋은 기능이 있는데, 나는 하루도 이 기부를 놓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8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버스값 아끼려고 걸어가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더 노력해야겠다.

통신비는 고무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6만원씩 나온다는데 나는 달랑 3천 350원 나왔다. 기본료가 3천 3백원이었고 불가피하게 문자메시지를 한통 보냈다. 알뜰 통신사 덕분이었고 대한민국 곳곳에 퍼져있는 공용 와이파이 덕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료로 1만 9백원을 내고 있었다. 차나 집이나 개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내는 금액이라고 했다. 나는 무소유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었다.

전기료는 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전혀 변함이 없다고 아버지께서 확인해 주셨고, 가스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미 온돌 대신 이불 두 개를 이용하고 있었다. 가끔 이불의 무게에 가위가 눌렸다고 의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꼭 이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 안 해도 되는데 가위 좀 눌린들 어떠랴. 가위 눌려도 그냥 즐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취미 생활은 다행히 독서라서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 정말 보고 싶은 신간은 서점에 가서 읽고, 나머지 책들은 동네 도서관에서 마음껏 빌려서 본다. 뭔가를 배우려는 욕구는 요즘 러시아어 공부를 하면서 채우고 있다. 물론 교재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다.

그래도 나는 흑자다

다시 통계청 자료로 돌아가면 2018년 4분기 1인 가구원들은 소득 169만원, 지출 177만원으로 8만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수인 나는 놀랍게도 수입 15만원 지출 3만 2천원으로 11만 8천원의 흑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수입대비 79%를 저축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 나가 살면 절대로 이렇게 못 살 것 같았다. 흑자 재정의 1등 공신은 갑자기 백수가 되기로 한 나를 내치지 않고 받아주신 부모님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생긴 공돈을 부모님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예상치 못한 세뱃돈으로 대폭 흑자가 예상되는 이번 달에는 고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님 돼지고기 한번 사드리고, 회를 좋아하시는 아버님 회 한 접시 사드려야겠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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