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설 때 제 장형(長兄)집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3형제의 식솔들이 모여든 건 다른 명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작지만 특별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 큰조카가 낳은 아이가 하나 더해진 것입니다. 고작 옹알이나 하는 생명체 하나가 집안을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

제 아우가 늦둥이로 딸을 낳은 뒤 20년 동안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집안이었습니다. 큰조카는 결혼을 늦게 한데다,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아서 어른들의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드디어 사내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아이가 없는 집안과 있는 집안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온 가족이 아이 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잔치라도 열린 듯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시들었던 꽃들이 단비에 우르르 피어나는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픽사베이

저는 ‘출산 지상주의자’는 아닙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풍경 속에서 행복하지만, 제 자식들에게 반드시 후손을 봐야한다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려주는 것도 없이 ‘대를 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과는 달리 나라의 출산율과 관련된 걱정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집안 가림도 못하면서 나라 걱정을 하는 꼴이지요.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아이 하나로 환해진 집안 풍경을 보면서, 최근에 본 뉴스 제목들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출생아 36개월 연속 감소’ ‘아이 울음소리가 안 들린다’ ‘가속화하는 저출산’…. 물론 이런 뉴스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면역이 돼서인지 걱정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판에 출산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이야말로 대충 걱정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발등의 불이 된지 오래입니다.

저조한 출산으로 인해 일어날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가슴은 납덩이라도 올려놓은 듯 무겁습니다. 미래에도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는 국력의 쇠락이나 국가의 역동성 하락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주거시설 등의 공동화는 물론이고 노동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하여 세수(稅收)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 결과는 재정지출, 특히 복지예산의 위축을 불러오겠지요. 내수시장의 축소로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해외로의 대탈출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입니다.

젊은 세대들의 의식구조를 보면 그런 우려는 더욱 현실성을 띱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20~44세 미혼 남녀 비율이 각각 28.9%, 48.0%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성의 경우 절반 가까이가 ‘아이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2015년 실태조사 당시에는 자녀가 없어도 된다는 남녀 비율이 각각 17.5%, 29.5%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결과는 가임여성(15~49세) 인구가 줄어들어드는데 더해 향후 저출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미혼남녀가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라는 점이 손꼽혔습니다. 남성의 경우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를 택한 응답자가 27.7%로 가장 높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서'가 26.1%로 뒤를 이었습니다.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해서'를 이유로 꼽은 비율은 19.7%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자유로움을 위한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32.0%로 가장 높았고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고 응답한 비율은 28.6%였습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이 기사의 인터넷 댓글들을 찾아봤습니다. 한 네티즌은 “모든 사람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 둘이 괴롭느니 혼자 외로운 게 낫다. 제 밥그릇은 알아서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말짱 헛소리이고 흙수저를 대물림시키는 것은 자식한테 못할 짓이다.”라고 자조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출산은 엄청난 사치다. 맞벌이 하면서 아이에게 투입되는 비용은 월 200만원 가까이 된다. 낳자마자 대학생 한 명을 25년 정도 뒷바라지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생의 황금기 20~40대가 통째로 날아가고 남는 것은 쪼들리는 인생, 불안정한 노후, 부양의 의무, 지치고 늙은 몸이 전부다”는 발언도 있었고, “유럽이나 북유럽처럼 의식주+교육의 사회공공제로 전환시켜 독점을 금지하고 균등하게 배분하라. 지금처럼 1%가 다 가져가는 체제로는 출산율이 아니라, 나라자체가 위협 받을 것”이라며 저출산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내놓는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네티즌의 고언이 보여주듯, 어렵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정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국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합니다. 의식주+교육을 사회가 공동으로 맡는 방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 자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출산율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가 되겠지요. 그 이전에 주거비 부담의 완화처럼 기존 정책들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야할 테고요. 이런 정책들은 예산이 충분하거나 쉬워서가 아니라, 내일의 생존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가정이나 국가 모두에게 아이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출산이 사치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나라만 미래를 꿈 꿀 수 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