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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체험기’[김부복의 잡설]
김부복 | 승인 2019.02.21 08:30

[논객닷컴=김부복] 일선 기자 시절, 강원도의 어떤 탄광을 ‘현장 체험’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초였다.

대한민국에서 환경이 가장 좋은 축에 든다는 탄광이었다. ‘고위공무원’과 함께 한 ‘현장체험’이었으니, 시설이 나쁠 수 없었다. 정부가 고위공무원과 언론을 위해서 고르고 또 골라서 선택한 탄광이었다.

기자는 탄광 사무실에서 안전교육부터 받아야 했다.

탄광 관계자는 모형으로 만든 갱도에 불을 점화시키면서 가스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불은 점화시키자마자 갱도 속을 달려가면서 ‘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무척 살벌했다. 자칫하면 막장 속에서 ‘통닭구이’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탄광 측은 기자 일행에게 ‘안전수칙’을 철저하게 주입시켰다. 그러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며 일행의 라이터를 ‘압수’했다.

‘통닭구이’가 되지 않으려면 라이터를 맡겨야 했다. 기자들은 덤으로 담배까지 꺼내서 맡겼다.

ⓒ픽사베이

막장은 짜증날 정도의 ‘저속 승강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땅속으로 수백 미터나 되는 곳이었다. 해수면보다도 낮은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막장은 우선 답답했다. 땅속이기 때문인지 무덥기도 했다.

갱도는 좁은데다 낮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야 했다. 구부렸던 허리가 피곤해서 고개를 똑바로 들면 ‘안전모’를 쓴 머리가 천장에 닿으면서 ‘땅땅’ 소리를 냈다.

허리를 구부린 상태에서 무더운 막장을 헤매는 것은 껄끄러웠다. 진땀이 저절로 흘렀다. 모두들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석탄가루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석탄가루는 탄광 측에서 빌려준 작업복을 파고들면서 진땀과 섞여 온몸을 ‘변색’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천장에서는 거무죽죽한 물까지 뚝뚝 떨어졌다. 곧 무너질 것 같아서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조명마저 흐릿했다. 노동자들은 그 깜깜한 곳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물론, 기자들은 ‘곡괭이질 체험’만큼은 사양했다.

그곳에서 밥을 먹는 노동자도 있었다. 몇몇 노동자가 컴컴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모든 게 까맣고, 밥만 하얗게 보였다. 그들은 어쩌면 반찬으로 ‘진폐증’을 씹는 듯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막장 ‘체험’을 마치고 나왔더니 목구멍에서 ‘시커먼 가래’가 제법 튀어나왔다. 코를 풀면 콧물 역시 까만 색깔이었다.

탄광 측에서는 기자들에게 돼지비계부터 먹으라고 권했다. 그래야 몸속에 들어간 석탄가루를 훑어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비계를 싫어하는 기자들도 허겁지겁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5년쯤 후, 미국의 탄광을 ‘현장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피츠버그에서 자동차를 타고 여러 시간 굴러간 곳에 있는 ‘시골 막장’이었다. 아스팔트 도로마저 군데군데 흠집이 있는 미국 동북부의 ‘촌구석’ 막장이었다.

기자는 대한민국의 막장을 겪었던 ‘과거사’ 때문에 각오부터 단단히 했다. ‘현장체험’을 사양하겠다고 버티고 싶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막장은 달랐다. 안전교육 따위는 없었다. 승강기도 ‘고속’이었다. 순식간에 기자를 막장까지 날라주고 있었다.

미국의 막장은 허리를 구부릴 필요도 없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도 천장은 머리 훨씬 위에 있었다. 키가 큰 서양 사람들의 머리보다도 더 높았다. 갱도도 널찍했다.

무엇보다 환기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무덥지가 않았다. 오히려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조명이 좋아서 어둡지도 않았다. 천장에서 시커먼 물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진땀을 흘리고 허덕거릴 일 따위는 아예 없었다. 따라서 비위에 껄끄러운 돼지비계를 먹을 일 또한 없었다.

미국에서는 ‘촌구석’이라는 막장인데도 쾌적했다. 대한민국의 ‘일류 막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그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을 ‘체험’하다가 좀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하나같이 백인뿐이었던 것이다.

탄광 노동자는 몸으로 때우는 직업이다. 이른바 ‘3D 업종’ 종사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유색인종’은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기자가 ‘취재’를 빠뜨릴 수는 없었다. 떠듬거리는 영어로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보수가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인들은 유색인종에게는 월급 짭짤한 일자리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육체노동이라고 해도 돈이 되는 곳은 백인 차지였다. 백인들은 시설 ‘짱’인 탄광에서 넉넉한 월급을 받으며 느긋하게 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막장과 미국의 막장을 모두 구경한 기자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는 ‘막장의 과거사’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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