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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어도 읽은 것이 아니었다[황인선의 컬처&마케팅]
황인선 | 승인 2019.02.25 09:42

다음 중 진짜 원전을 읽어본 책은?

아라비안나이트, 삼국지, 수호지, 춘향전, 열하일기, 신곡, 걸리버 여행기, 파랑새, 동물농장, 멋진 신세계...

이 책들은 성인을 위한 고전이지만 내용이 재밌고 교훈적이어서 어린이 동화로 개작된 버전이 더 많이 읽힌 책들이다. 어릴 때 위인전과 고전을 많이 보라고 해서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이 책들을 동화버전, 만화버전으로 만들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는 배신감과 착각에 빠졌다. 어릴 때 읽은 위인전 중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당부분 알게 되니 별로 위인도 아닌 자들이 많았다. 왜곡, 반역도 더러 있었다. 다시 읽어 본 고전들은 동화 버전에서는 많은 것이 삭제되거나 심각한 주제들이 희석되어 줄거리만 읽은 것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잘 사는 친구 집에서 『아라비안나이트』원전을 빌려본 적이 있었다. 그 책은 큰 사이즈 두 권으로 된 것인데 당시 가방 양쪽에 한 권씩 넣었더니 양팔이 뻐근할 정도로 무거웠다. 3일을 정신없이 읽은 책에는 잔인함, 권력의 횡포, 야한 장면, 아라비아의 고대 습관과 문화, 지금은 이해 안 되는 믿음과 수간(獸姦)의 역사 등이 가감 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개작된 동화, 위인전을 읽혀야할까?

그냥 프리퀄 식으로 보면 좋은데 어른이 된 후에는 마치 그 책을 읽은 것처럼 착각하고 안 보게 되니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도 나와 같은 배신감과 착각에 빠지지는 않을까?

ⓒ픽사베이

이번 겨울에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L'Oiseau bleu)』를 읽었다.『앵무새 죽이기』와『신곡』도 읽었고 지금은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읽는 중이다.

이 중에서 파랑새의 어떤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저자가 잔인하다’ 싶은 대목이다. 사실 나는 파랑새 동화를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고 파랑새는 주변에 있으며 그런데 조심하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는 것만 외었다.

파랑새는 구성이 제1막 1장 나무꾼의 오두막, 제2막 2장 요술쟁이 할머니의 집/3장 추억의 나라, 제3막 4장 밤의 궁전/ 5장 숲 속, 제4막 6장 막 앞에서/ 7장 공동묘지/8장 아름다운 구름들이 그려진 막 앞에서/9장 행복의 정원, 제5막 10장 미래의 나라, 제6막 11장 작별/12장 잠에서 깨어남으로 구성되어 있다. 5막 10장은 주인공 틸틸과 미틸이 빛의 요정 안내로 ‘미래의 나라’를 방문하는데 거기에는 곧 태어날 아기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그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갈 때 발명품이나 이론 또는 병 등 무언가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 10장 중 한 아이가 반갑게 와서 틸틸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 (틸틸과 미틸에게 쉬지 않고 입을 맞추며) 안녕! 잘 지냈어? 내게 입 맞춰줘.
형! 미틸 누나도. 당연히 형과 누나 이름을 알지. 내가 바로 형과 누나의 동생이거든. 저쪽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형이 여기 와 있다고 누가 가르쳐줬어.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고 엄마에게 말해 줘.

틸틸 뭐라고? 그럼 너 우리 집에 올 거니?

아이 물론이야. 내년 성지주일(예수가 수난 전 예루살렘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는 일요일)에 갈 거야. 동생이라고 날 괴롭히면 안 돼! 형과 누나를 미리 만나다니 정말 좋아. 아빠에게 아기 침대 좀 고쳐달라고 부탁해 줄래? 그런데 형, 우리 집은 좋아?

틸틸 나쁘지 않아. 그리고 엄마가 굉장히 좋아!

아이 음식은?

틸틸 때에 따라 달라...케이크가 있는 날도 있어. 그렇지 미틸?

미틸 응. 새해랑 7월 14일(프랑스 혁명 기념일)에는 엄마가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주셔.

틸틸 들고 있는 가방에는 뭐가 있니? 넌 우리 집에 올 때 뭘 가져올 거야?

아이 (매우 자랑스럽게) 세 가지 질병을 가져갈 거야. 성홍열, 백일해, 홍역...

틸틸 뭐? 그렇게 많이? 그럼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

아이 세상을 떠나는 거지 뭐.

틸틸 뭐라고? 그럴 거면 뭐 하러 태어나?

아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걸, 뭐.

아, 이런! 이 대목에서 내 눈이 따끔거리는 건 뭔가? 틸틸네는 가난한 벌목쟁이 집안이고 벌써 여러 형제들이 가난과 병으로 죽었다. 크리스마스 날 앞에 부잣집에는 멋진 말과 마차를 탄 사람들이 오고 그 집 아이들은 맛있는 케이크를 쌓아놓고 먹지만, 그걸 창밖으로 쳐다보아야만 하는 틸틸, 미틸이고 찾아온 이는 요상한 마술 모자를 가져온 요술쟁이 할머니뿐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틸틸 집에 있던 파랑새마저 날려버린다. 이 잔인한 운명과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기술이 어찌 동화로 전달될 것인가? 책의 끝은 다음처럼 끝난다.

병이 걸렸던 이웃집 소녀(빛의 요정을 닮은)가 틸틸이 준 파랑새를 들고 왔는데 틸틸이 그 새를 받으려고 하자 새가 날아가 버린다. 소녀가 울음을 터트리자,
틸틸 괜찮아. 울지 마. 내가 다시 잡아줄게. (무대 앞쪽으로 나와서 관객에게 말한다.) 누구든 그 새를 보면 우리에게 돌려주시겠어요? 우리는 그 새가 꼭 필요해요. 행복을 위해서.

이런 젠장, 또 눈물이 난다. 행복이 뭐라고! 엄마한테 피임부터 하라고 해, 틸틸.
그러니 아이들에게 개작된 동화, 위인전을 읽혀야할까?
아 참, 그대들은 고전을 다시 읽지 않을 것인가? [논객닷컴=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전 제일기획 AE/ 전 KT&G 미래팀장
저서<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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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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