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19학번 새내기들을 만났다. 얼마 전 ‘새로 배움터’에 참석해 신입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앞으로 새터를 가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몇 년 뒤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생각이 들자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보낸 2박 3일이 귀하게 느껴졌다. 선후배가 한 자리에 모여 잔을 부딪치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후배 한 명 한 명을 알아갔다. 새내기들의 이름, 나이, 사는 곳을 비롯해 대학 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 앞으로의 계획까지 파악했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한 우리는 진솔한 대화로 넘어갔고, 휴대폰 번호 교환으로 매듭지었다. 그렇게 연락처에 새 이름을 하나둘씩 저장했다. 이제 다음 달 개강하고 밥 사달라는 후배 연락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과연 얼마나 많은 밥 약속이 잡힐지 궁금하다. 내가 얼마나 좋은 선배인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테니 학기말 성적표를 확인하는 것만큼 두근거린다.

연락처 목록에 큰 변화가 생기니 참 신기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얼굴과 이름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하루, 이틀 만에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고 번호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으니.

ⓒ픽사베이

문득,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건넨 말이 생각난다.

“넌 아직은 나에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여우는 어린왕자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여우는 어린왕자가 자신을 길들이면 서로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길들이기 전까지는 각자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길들인 후로는 서로에게 의미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 그래서 길들인 후 둘의 관계는 길들이기 전과 같을 수 없다. 길들임으로써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거겠지. 여우와 어린왕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번호를 교환했을까?

어린왕자가 처음 만난 여우와 친해진 것처럼 나도 후배들과 첫만남에 부쩍 가까워졌다. 후배들은 나를 어떤 선배로 보았을까? 마음에 들었을까? 나와 오후 네 시에 만나기로 약속하면 세 시부터 행복해할까? 후배들에게 내가 얼마나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선배일지 심사받을 시간이 가까워졌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모습이 곧 오늘날 선배가 후배에게 밥 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후배에게 밥 사주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캠퍼스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 아니라 특별한 선배가 되겠지. 같이 밥을 먹는 것은 곧 식구(食口)가 되는 것이니, 밥 먹자는 후배의 연락은 나를 가족으로 맞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럼 같이 밥을 먹어 가족이 되면 호칭이 선배가 아니라 형, 오빠로 바뀌는 건가? 밥 먹고 나서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지켜봐야겠다.

후배님들, 연락만 주세요. 식당 예약은 제가 할게요.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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