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지금은 사라진 듯하나 가훈을 만들어주고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넣어주는 행사가 이따금씩 열리곤 했다. 유난히 가문을 중시하고 뿌리를 따지던 문화에서 족보와 함께 가훈이 쓰여 있는 액자가 집안에 걸려 있어야 있어보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우리세대는 자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급훈과 교훈이 걸려있는 교실에서 공부했으나 그런 급훈과 교훈이 무엇인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고 학교선생님들도 급훈이나 교훈과 연결 지어 가르치는 노력도 없었다. 그냥 걸어놓는 장식일 뿐이었다.

자식들이 태어나서 신체와 지혜가 자라나는 것은 부모에게 더 없는 기쁨이다. 자녀들 키가 자라나는 것이야 알지만, 얼마나 자랐는지를 수차례 측정하곤 했다. 자녀를 방안 벽에 붙어 서게 하고는 키를 표시하는 가로 눈금을 그어놓았는데 이런 흔적은 이사를 가면서 특별한 느낌으로 살아나곤 한다. 즉 이집에서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느꼈던 기쁨을 기호로 남긴 흔적이어서다.

ⓒ픽사베이

자동차운전을 하는 사람에게 운전계기판은 무척 중요하다. 전에는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 분당엔진 회전수(rpm),기름 탱크의 잔여기름 양과 시간 등 간단했으나 이제는 연비, 출발과 주유후 이동거리, 평균속도, 출발 후 운전시간에 더해 자동차 이상여부 등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졌다. 내비까지 장착되어 목적지까지 운전하는 동안 자동차상태는 어떤지, 가는 길은 잘 찾아가는 건지를 확인하며 운전할 수 있다. 잘못 길에 들어섰다가도 다시 내비가 자동으로 경로를 수정하며 목적지로 안내해준다. 목적지가 정해지더라도 이런 계기판과 내비가 없을 때는 처음 가는 먼 길이라면 차에 문제는 없는 건지, 경로에서 이탈하는 건 아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두 깜깜한 가운데 이정표를 보고 또 보며 불안한 가운데 운전해야 한다.

가훈 교훈에 이어 직장에 들어가면 사훈이란 게 기다린다. 회사 노래 즉 사가와 사훈이 동양적인 문화의 산물이었는지 서양회사에 다니면서 사훈이나 사가란 걸 들어보지 못했다.

경영전략가들이 동양기업문화에서 착안했는지는 몰라도, 언제부터 사훈이란 동양적이고 추상적인 가치지향성을 발전시켜 동양에서는 부족했던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나 수단이 무엇인지 체계화시키고 중간과정을 측정하는 기법을 만들어 내었다. 이제는 이런 기법들을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도 따라 한다.

우리나라에도 광법위하게 도입되어 웬만한 대기업이나 정부기관과 NGO단체들에서 활용하고 있다.

가장 윗단의 큰 그림인 비전을 세우고 비전달성을 위한 미션스테이트먼트가 만들어지고 미션스테이트먼트를 구체화시킨 전략을 만든다.

비전은 미래 어떤 조직이 되고 싶은지를 밝혀 내부 구성원에게는 영감을 주고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를, 외부고객에게는 조직이 어떤 가치위에 세워져 나가는 지를 말해준다.

미션은 현재 무엇을 하는지를 통해 조직의 목적과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를 내부구성원들에게 알리려 한다.

한 예로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은 비전으로 “한 번의 클릭으로 전 세계 정보 접근”을 미션으로는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하여 어디서나 접근가능하고 유용하게”를 설정해 놓았다.

비전과 미션의 연결성이 높고 측정도 용이해 보이는데 비해 국내 대표적인 금융그룹인 신한금융지주는 비전으로 “세계수준의 금융그룹”을, 그리고 미션으로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이라 설정해 듣기에는 좋아 보이나 연관성도 낮아보이고 구체적으로 비전으로 나아가는 진도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연말이면 부서나 본부별로 KPI(핵심성과지표)를 세우느라 분주하다. 다음해 목표에 따라 평가와 고과가 결정되는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간다.

그러나 이런 기법이 도입되었다 해서 자동적으로 유용하고 또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용되는 현장에서 비전과 전략이나 핵심 성과지표와의 연관성이 낮거나 없어 보이는 사례가 비일 비재하다. 또 성과측정지표가 지나치게 많아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의 가용자원을 집중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그 아래 국정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 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설정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16개 전략과 100개 과제를 만들었다. 100개 과제에는 북한인권개선, 광화문대통령, 적재적소 공정한 인사 등도 포함되어 있으나 이들 과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또한 국가비전을 향해 얼마나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성과측정을 어떻게 하는지도 찾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운전자에 따라 그 성능은 크게 다르기 마련이다. 회사건 국가건 비전으로부터 성과 측정까지 아무리 최신 기법을 사용해서 만들더라도 그 결과는 천양지차가 난다.

국가비전으로부터 국정목표,그리고 전략과 과제는 연관성이 커야하고 평가지표도 이의 달성과 직결되는 지표를 개발하되 핵심지표는 소수로 해서 한 눈에 잘 가고 있는지를 정부나 국민 모두 주의 깊게 지켜보게 해야 이런 틀이 진가를 발휘한다.

비전이나 미션은 멋으로 만드는 장식품이 아니다. 올바른 성과측정이 있어야 비전으로 얼마나 잘 다가가는지 알 수 있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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