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사저 한 칼에 했듯이 FTA도 한 칼에 하겠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8일 당내 모임에서  “물리력으로 하면 돌파하겠다”며 이렇게 못박았다.  여당과 야당이 비준을 둘러싸고 극한적으로 맞서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처리를 앞두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아무리 집권여당 대표라지만 이토록 단호한 다짐의 목소리를 내놓은 것도 참으로 드문 일이다. 
 
사실 집권당으로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처리를 위한 막바지 고비에 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면 내년 1월 발효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내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 큼직한 정치일정이 있기 때문에, 통과를 감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정기국회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그래야만 이명박 대통령 치적의 하나로 내세울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치적이라 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그렇지만 숱한 논란을 거듭해 온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는 것 자체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한 획을 긋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는데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사전에 충분한 대화와 조율을 거쳐서 의회에 올리고 큰 마찰 없이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 반대도 있었지만 통과과정은 순조로웠다. 물론 미국은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조항에 대해서는 재협상을 통해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그러니 미국으로서는 통과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은 속된 말로 ‘꽃놀이패’를 즐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너무 다르다. 여-야가 협의하고 토론해서 처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 의회에서 완전 통과된 마당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통과 또는 포기 2가지 밖에 없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든 불리하다고 생각하든 마찬가지이다. 모 아니면 도 뿐이다. 이 시점에서 반대론을 펼치기는 쉬워도 포기하자고 말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통해 이익의 균형이 깨졌으니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중간지대도 없다. 물러설 곳도 없다. 그러니 여당이나 야당 모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집권여당이 이 사안 만큼은 홍대표 말처럼 좀더 단호하게 밀어부쳐도 탈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홍 대표가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을 것이다. 홍 대표의 말을 미뤄짐작하건데 한나라당은 여의치 않을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리력을 쓸 지도 모른다.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가운데 하지 못한 것이 없다. 종합편성TV 도입을 위한 미디어법 개정을 비롯해 KBS 사장 등 정권에 비우호적인 인물들을 축출하는 데도 모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로 말미암아 일시 보류 또는 후퇴한 경우가 간혹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 전술적 후퇴였을 뿐이고, 언제든 틈만 나면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았다. 이번에도 역시 다소의 진통은 있을지언정 한나라당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기어코 통과시키고 말 것이다. 다수당의 힘이 이럴 때 좋은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한 현재의 야당에게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심사숙고 없이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하고 끝낸 것이 노무현 정부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협정의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나 정보공개 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홍준표 대표가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이 노무현 정부에서 찬성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끝나고 통과를 강행할 태세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끝장토론 등 대화의 몸짓은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진심은 결코 실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것이 결정돼 있는 상황 아닌가?
 나도 예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더욱이 지금 미국 경제가 저렇게 늪에 빠져 있는데,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큰 혜택을 받을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돌이키거나 다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 있다. 태백산으로부터 흘러나온 한강물이 이미 서해바다 가까이까지 와 있거늘, 토론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모두가 부질없는 짓 아닐까? 차라리 깨끗이 통과시켜 주고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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