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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은 없다[김부복의 고구려POWER 14]
김부복 | 승인 2019.02.28 09:50

[논객닷컴=김부복] “요동은 본래 우리 영토였는데, 수나라가 4번이나 군사를 출동하고도 점령하지 못했다. 내가 이제 동쪽으로 출정함은 우리를 위해서 수나라 자제들의 원수를 갚아주고, 고구려를 위해서 연개소문에게 시해된 임금의 수치를 씻어주고자 해서일 뿐이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고구려를 침략하면서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륜’을 배반한 것은 이세민 자신이었다.

이세민은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둘째아들이라 왕위가 자신의 형인 이건성(李建成)에게 넘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세민은 이게 못마땅해서 형 이건성은 물론이고 동생 이원길(李元吉)까지 살해해버렸다. 그리고 아버지 이연을 태상황(太上皇)으로 밀어내고 ‘태종’이 되었던 것이다. 궁성의 북문인 ‘현무문(玄武門)’에서 이 끔찍한 살인극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를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쨌거나, 이세민은 고구려 땅을 ‘요동(遼東)’이라고 했다. 그 ‘요동’이 뭔가.

ⓒ픽사베이

요동의 ‘요’는 ‘멀다’, ‘아득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요동은 ‘아득하게 먼 동쪽에 있는 땅’이라는 얘기다. 그 지명이 오늘날에도 ‘요녕성(遼寧省)’과 ‘요하(遼河)’ 등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어째서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를 ‘머나먼 땅’이라고 했을까. 중국에서는 고구려가 아득하게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극동(極東)’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땅 이름만 봐도 요동은 중국 땅이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기들 땅이었다면 그처럼 '아득한' 이름을 붙였을 리 없었다.

그들은 현재의 북경(北京) 근처도 ‘유주(幽州)’라고 불렀다. ‘깜깜한 땅’이라는 뜻이다. 그랬으니 유주는 유령이나 도깨비 따위가 설치던 곳이었다. 유주가 자기들 땅이었다면 그렇게 ‘깜깜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중국에게 요동은 남의 나라 요동이었고, 유주 역시 남의 나라 유주였다.

반면, 고구려에게 요동은 국도인 ‘평양성’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아득하고 먼 동쪽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국토의 중심부 또는 서쪽이었다. 평양성에서 보면 북쪽이었다. 결코 동쪽일 수가 없었다.

요동성의 고구려 이름은 ‘오열홀(烏列忽)’이었다. ‘열(列)’이나 ‘열(烈)’이라는 글자를 당시에는 ‘라’로 읽었다. 따라서 ‘오열홀’은 우리말로 ‘오라골’, ‘오라고을’이었다.

이세민은 고구려를 침략해서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고구려가 방어한 곳은 ‘요동성’이 아니라 ‘오열홀(烏列忽)’이었다. '오라고을'이었다.

그 ‘오열홀’은 ‘난공불락’이었다. ‘오열홀’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된 사각형 모양의 성이었다. 내성에는 정치∙군사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부서가, 외성에는 일반 백성의 거주지가 있었다.

성문이 3개였는데, 외부와 통하는 문은 외성과 내성에 각 1개씩이었다고 했다. 이 2개의 문만 봉쇄하면 외부로부터의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고구려는 이 성문을 닫아걸고 수성작전을 폈다. 적이 공격하다가 제풀에 지치도록 만들고, 지친 나머지 공격이 둔화되면 밤에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오열홀’이 난데없이 ‘요동성’으로 둔갑하게 된 것은 아마도 김부식(金富軾)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훗날 조선시대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우리나라의 서쪽에 ‘동쪽’인 ‘요동’이 있다고 다소 헷갈리게 적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 요동과 인접하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왜와 통한다. 평안도에는 아직도 고구려와 고주선의 유풍이 남아 있다. 복장이 화사하고, 건물이 크고 화려하며, 노래와 춤이 분잡하다. 평양의 부유하고 번성함은 오히려 서울보다 지나칠 정도다.”

물론 김부식 등 삼국사기 편찬자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당나라가 고구려의 정신을 철저하게 말살하기 위해 모든 역사 기록을 없애버리는 바람에 중국 자료를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다.

‘오열홀’이라는 이름은 우리 민족의 한 갈래인 여진족이 청나라를 일으키면서 ‘만주(滿洲)’로 변했다. 일제는 이곳에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고 중국에 싸움을 걸기도 했다. 그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만주라는 이름을 무척 껄끄러워하고 있다. 악착같이 ‘뚱뻬이(東北)’, ‘동북 3성(東北三省)’ 운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땅 이름이라도 고구려 때의 ‘다물(多勿) 정신’으로 되찾아서 부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되찾기는커녕, 요동을 아예 중국식 발음으로 ‘랴오뚱’이라고 하고 있다. 요녕을 ‘랴오닝’, 북경은 ‘뻬이징’이라고 부르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비가 있는 ‘집안(輯安)’은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그마저 ‘지안’이라고 하고 있다. ‘발해(渤海)’는 ‘밝은 해’를 뜻하는 순우리말일 수도 있다는데, ‘뽀하이’다.

언젠가, TV 사극에서 고구려 군사들이 ‘요동성’을 수비하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가 '요동성'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열홀’이라는 고구려 이름은 사극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성문 위에 ‘遼東城’이라고 한자로 쓴 현판까지 걸려 있었다.

고구려 역사를 조명,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기획했다는 사극이 이랬다. 역사 교과서도 아이들에게 ‘요동성’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김부복  bel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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