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웃는한국]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하노이 회담은 ‘결렬’된 것일까, 아니면 ‘결렬의 연기(演技)’일까.

나는 후자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연기의 달인이다. 그들은 최적의 타이밍(timing)을 찾아 시기를 늦추는 전략적 결렬을 추구한 것이 아닐까? 지난 정상회담은 시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효과를 거두기에 적절치 않았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시작되는 날 미 하원에서 청문회가 열려 트럼프 대통령의 전 ‘집사’ 코헨(Michael Cohen)의 폭탄증언이 있었다. 미 주요 언론은 7시간 가까이 실황중계하고 하노이 회담을 잠재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언문에 합의해도 자신이 바라는 포퓰리즘의 홍보효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묻었다. 예상대로 결렬이후 헤드라인 탑 뉴스는 ‘코언’에서 ‘결렬’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 붙여서 얻을 것이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트럼프와 김정은은 단독회담 등에서 개괄적인 향후 추진방향에 관해 이해를 같이 하고, 그 뒤의 확대협상 등은 결렬을 연기하는 의식(ceremony)에 불과했을 것이다.

양측의 이해관계는 매우 접근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제재를 풀어 경제개발/투자유치를 통해 북한을 잘 살게 만들겠다는 것이 장기집권 플랜인 것으로 보인다. 핵무장을 이끌어온 군부와 강경 매파를 달랠 명분도 경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노벨평화상도 군침을 흘린다. 북한 비핵화는 재선과 노벨상을 이루는데 1타 2매의 카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스몰딜(small deal)보다 빅딜(big deal)이 낫다. 즉,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노이에서 갑자기 빅딜을 만들기는 쉽지 않고 준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두고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양측은 앞으로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화려하게 연기를 펼치면서...

두 사람의 합의에 대한 집착은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나쁜 거래보다는 거래 안 하는 게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a bad deal)”라는 트럼프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이게 어떤 카드인데 함부로 낭비하는가? 기자 한 명이 인권문제에 대해 김정은에게 묻자 트럼프가 가로 막아 대변한 것은 트럼프의 진심을 엿보게 한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미사일발사 및 핵실험 중단'이라는 선물을 주고, 트럼프는 한미합동 군사훈련 취소로 답하였다. 이는 선금(先金)일 수 있다. 협상 결렬 후에 북한 언론의 대미 비판을 자제시키고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셨다”고 보도하게 한 것은 김정은의 합의에 대한 집착을 엿보게 한다.

‘하노이 연극’의 힌트를 주는 에피소드들도 있다. 우선 김정은이 3일 넘게 기차를 타고 온 것도 명 연기다. 결렬 후에 “김정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고 굳은 얼굴로 때론 먼 산을 보았다”는 것도 대단한 연기력이다. 결렬 후에 최선희 북한 외교부 부상이 “김정은 위원장이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하는 느낌이 든다”라는 취지로 ‘흘린 것’도 걸작이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허락 없이 그런 말을 했겠는가? 과연 한국에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외교관이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중재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정말 그럴까? 나는 회의적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상기와 같은 분명한 입장에 따라 움직인다면, 제3자가 개입할 여지는 제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결렬 후에 문대통령과 통화, 북미 중개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립서비스라고 본다. 그간 소외되었던 문 대통령에 대한 관심 표시 차원의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겠는가? 이것도 연기가 아니겠는가? 이것에 들뜰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미 정상의 의지가 있고 이해관계가 합치하는 한, 제3차 북-미회담은 분명히 올 것이다. 아마도 더 크고 넓은 범위의 합의를 초래하면서...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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