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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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픈가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화가 나도 불같은 화가 나야 마땅했는데 말이다. 화를 낼 힘도, 독설을 퍼부을 힘도 일시에 사라지고 그냥, 마음이 아팠다. 아픔은 슬픔을 몰고 왔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에 안 들 때’는 많았다. 나는 그때는 화도 내고, 충고도 하며, 내 생각을 드러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했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그전의 마음은 금방 잊혔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그 당시의 내 마음’에 안 드는 가벼운 기침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불쌍하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어떤 충고도 질책도 할 수가 없고 그냥 눈물만 나온다. 어쩌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기도가 반복되고 시간도 길어진다. 그러면서도 한참 동안은 그녀를 보고 싶지가 않다.

말문이 막힌다. 그녀를 떠올리는 것도 힘들어진다. 마음에 안 드는 것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못 느꼈던 신체 반응 앞에 당황스럽다. 화도 나지 않고 마음만 모질게 아픈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것이 그녀에 대한 ‘실망’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아졌다.

요즘 계속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것’과 ‘실망했다’는 것의 그 엄청난 간극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말 그대로 ‘내 마음’과 ‘내 취향’, ‘내 성격’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호불호에 따라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이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이지 모두의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살펴보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주의를 요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내 개인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평판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데 실망했다는 것은 다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저절로 체득되어 있는 상식이 다치고 참이 다친 것이다. 나만 느끼는 내 개인의 감정인 ‘마음에 안 드는 것’과는 무게를 달리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어떤 언행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마음을 닫는다면 그것은 그가 내보인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사람의 평판과 무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실망’이란 단어가 제일 무섭다.

살면서 행하는 모든 언행이 어찌 모두의 마음에 들 수만 있겠는가. 상대의 마음에 안 들어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나 역시 많고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존재 자체에 의구심과 불신을 느끼게 하는 '실망‘을 준 일은 없었을까를 짚어보는 마음이 무겁고도 무섭다.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곧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다.

日新又日新! 실망을 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자신을 가다듬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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