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에게 부치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곽진학]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끔 뒤를 돌아보게 된다.

세월이 눈썹에 하얀 안개를 덮는 절망의 시간에는 아득한 그리움이 한 여름의 뭉개구름처럼 솟아오른다. 세월은 추억과 애절함의 흔적이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우수와 경칩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옛날 고향마을에서는 농사철 준비로 한참 채비를 할 때다.

다들 건강하지? 여기는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이곳에 사업하는 분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너희들 사정은 어떤 줄 모르겠구나.

내 용돈을 보내고 싶다며 전화를 주었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아 무척 망설이고 주저했다. 이민 간지 30여년 만에 겨우 집 한 칸 장만해 이제 큰 걱정 않고 살아가는 네게 솜털만한 짐이라도 될까 봐 많이 조심스러웠다. 작은 희망을 품고 이 땅을 떠나던 날, 나도 칠흑 같은 시기를 보내던 때라 빈손으로 보낸 설움이 아직도 눈사람처럼 커져 가기만 한데 고운 정리(情裏)를 오롯이 간직한 네가 기특하고 감사하기만 하구나. 피붙이 하나 없는 이역만리( 異域萬里), 그 황량한 광야를 외로움과 텅 빈 가난 속에서도 용케 달려 나온 너희들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먼 곳에 계신 부모님이 네 반가운 소식에 눈시울을 붉히시리라. 너는 아버지 모습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할 테다. 상여가 떠나던 날, 누런 베로 지은 상복을 입고도 비단옷 입은 아이처럼 뽐내고 다녔으니 아마 여섯 살이 채 되지 않았을 성 싶다. 그리움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면 꿈에라도 어렴풋이 한번 뵙기나 하였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

ⓒ픽사베이

너도 이제 60을 넘어섰다. 너는 어릴 때 머슴아처럼 구슬치기, 딱지치기 같은 내기를 무척 즐겨해 방앗간 집 막내아들과 늘 어울려 다녔다. 네 작은 오빠와 나는 쌀밥이 먹고 싶어 아버지 식상(食床)을 물릴 때를 기다리느라 숟가락질을 천천히 했고 아버지는 우리 맘을 빤히 아시고 끼니때마다 그 귀한 쌀밥을 남겨 주시곤 했단다.

꿈과 애틋함이 서려있는 고향마을을 떠나 온지 어언 60년, 머나먼 긴 세월의 강이 흘렀다.

50여 가구(家口)가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던 정든 마을, 동네 뒷들에는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들녘을 곱게 물들이고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저녁노을은 황홀하기만 했다. 담장위로 씩씩하게 뻗어가던 호박넝쿨, 처마 아래 집을 짓던 제비, 마당 덕석(멍석)에 늘어놓은 빨간 고추, 웅덩이에 우글대던 올챙이, 바람결에 파도치던 초록 밀밭..... 한 시도 잊을 수 없는 먼 꿈같은 추억들이다.

텃밭에는 정구지(부추)와 파, 상추가 무럭무럭 자랐고 도랑과 물꼬 밑에 숨겨놓은 통발에는 미꾸라지가 소복했다. 남의 밭에 심겨진 무를 쑤~욱 뽑아 먹기도 하고 몰래 꺾은 밀 이삭을 모닥불에 구워먹느라 온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후줄근한 띠 한 줄로 네 언니는 어설프게 동여매고 그 위 네 오빠는 쉬엄쉬엄 걸리면서 모내는 논으로 젖을 먹여 오던 그 까마득한 논둑, 한 여름 땡볕에서 보리밭의 깜부기를 뽑느라 두 손은 까맣게 물이 들었고, 여름장마철에는 콩과 밀을 큰 가마솥에 볶아먹기도 하고, 줄줄이 새끼를 낳는 토끼를 키우느라 남의 밭 풀씨(토끼풀)를 훔치던 일, 비오는 날 종이 비료 부대(負袋)를 쓰고 다니던 일, 땅 따먹기,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 달집 불 지르기(정월 보름 날), 메뚜기 잡기, 논둑에 불 지르기 등 잊지 못할 금쪽같은 아련한 기억들이다.

사랑과 정(情)이 머물던 고향, 이제 산은 헐리고, 마을 뒤에는 고속도로와 기차역이 들어서 자동차와 기차가 분주히 오가며, 아파트와 작은 공장들이 여기저기 난립하고 골목은 시멘트로 더덕더덕 덮여져 있다. 강물처럼 넘실거리던 개울이 조그만 도랑이 되었고 빨래를 하던 집 앞 냇가는 마른 지 오래다. 흙과 풀도 옛날 그 모습, 그 얼굴이 아니다. 공해와 소음이 가득한,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스산한 회색지대 같기만 하다. 이제 고향마을은 낯설고 추억은 실낱같다. 반가워 눈물짓고 헤어질 때 통곡하던 모습은 간데온데없고 젊은이들은 신기루 같은 행복을 쫒아 도시로 달려갔고 연로한 노인들만 마을회관에서 하루 종일 한담을 나눈다. 도시화와 산업화에 실려 알뜰살뜰 간직했던 고향의 그리움이 산산 조각이 되고 허망하기만 하다.

이제 좀 여유롭게 쉬어가며 하려무나. 여행도 다니고 건강도 돌보고 해야지.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

형제간의 우애도 산길 같아 자주 오가지 않으면 금세 잡초가 우거져 산길이 없어진단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부르고, 찬양하고 싶다.

더 좋은 것은 항상 미래에 있다고 한다.

벌써 3월, 보리가 한창 쑥쑥 자랄 때다.
매서운 겨울을 이기고 여린 목숨을 지켜 온 청정한 보리가 한때는 가난한 이 땅의 희망이었다. 그 밭에 어머니도 늘 계셨지...

고향마을에는 지금도 보리가 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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