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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종말
차기태 | 승인 2011.10.21 11:26

   
 

오늘 아침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끝내 피살됐다는 소식이 조간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렸다. 40년 넘게 철권을 휘둘렀던 통치자기 이렇게 비명에 간 것이다. 그의 죽음은 안된 일이기는 하지만,  리비아와 아랍세계의 정치적 선진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사실 그의 죽음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애초 민주화를 외치는 국민들에게 발포하지 않고 적극적인 대화로 풀어갔다면 이런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끝내 물러나더라도 이렇게 죽음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는 바람에 그토록 미워하던 서방세계가 다시 개입할 빌미를 마련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 자신의 나라를 어렵게 하고, 무고한 많은 생명을 희생시킴은 물론 자신의 안위마처 망치고 말았다.
 
그는 여생을 조용히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었다. 때로는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처럼 오히려 평안한 노후를 선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4/19혁명 당시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하자 주저 없이 권좌에서 물러나 해외로 나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카다피가 이승만 대통령처럼 했다면 그에게는 분명히 다른 여생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리비아 국민을 위해서나 카다피 자신을 위해서나 보다 소망스럽고 유익한 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쉬운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굳이 어렵고 험한 길을 스스로 선택했으며, 그 과정에서 광기를 드러냈다.
 
시위 초기에 시민들에게 총질을 한 것이나, 민심은 이미 떠났는데 국민들을 향해 ‘적’들과 싸워 순교하라고 외친 것이나, 모두 광기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대세가 이미 판가름 나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는데도 그의 선동은 계속됐다. 그는 광기의 포로가 된 채 삶을 불행하게 마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광기의 종말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광기에 신음하고 있는 나라가 아직도 있다. 시리아와 예멘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한 총질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위 휘생자릉 위한 장례식 행렬에 대고 발포하는가 하면, 함포까지 동원해 살육하기도 한다. 자기 국민들에게 거친 폭력을 쓰는 이것이야말로 광기 가운데 극악한 광기이다. 가장 어리석고 가장 폭력적인 광기이다.
 
광기가 자신에게 그치면 참을 만하다.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어리석어 보이긴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향해 나오는 광기는 언제나 슬픈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더욱이 권력자가 자국의 국민들을 향해 광기를 부릴 때 그 결과는 참으로 비극적이고 참혹할 때가 많다. 그런 일은 우리나라도 겪어본 바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광기의 결과가 어떤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광기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끝난다. 광기가 심할수록 그 종말은 더 빨리올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게 찾아올 수도 있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도 부지불식간에 권력과 생명을 빼앗겼다.
 
그렇기 때문에 광기를 부릴수록 신변의 위험은 더 커진다. 그 광기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무너지거나 외부에서 가로막고 나서게 된다.
 
이제 세계의 눈은 시리아와 예멘에서 벌어지는 광기로 쏠리고 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두 지켜보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도 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기 전에 광기가 끝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대부분의 신문에 피투성이가 된 카다피의 모습이 컬러 사진으로 실렸다. 끔찍한 모습이다. 아침 신문에서 굳이 이런 모습을 실어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혐오감을 주어야 할까?
 
그런 사진을 게재하고 싶으면 흑백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면 충격이 덜하다. 조선일보만 흑백 사진을 쓴 것 같다.
 
TV에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은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건전하고 선량한 심성에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조간신문에서 카다피의 피투성이 모습 사진을 싣는 것도 마땅히 자제되어야 했다. 아무리 신문사들의 경쟁이 치열하기로 인간의 선량한 심성을 해쳐서는 곤란하다.
 
이런 것 역시 건전한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는 광기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다만 치명적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작은 광기도 이제는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편집장

차기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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