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13]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이삿짐과 씨름하기를 벌써 몇 주째다. 전문 업체에서 다 옮겨주고 정리해 준다고는 하지만 준비과정이 녹록치 않다. 가져가야할 짐을 챙기고, 버릴 물건들을 골라내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살면서 몇 차례 집을 옮겨봤지만 이번 같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사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이사가 나에게 유별나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에 이사할 때는 아내 혼자서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사가 처음인 것처럼 서툴다.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도 나를 힘들게 한다. 지난 20년 동안 버리지 않고 쌓아 둔 것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다 보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결국 몸살이 나고 만다. 그런데도 자기가 움직여야 이사를 할 수 있다는 책임감에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제는 종아리까지 아파 밤새 끙끙댄다. 남편이 매사에 어설퍼 중요한 일은 다 자기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다.

Ⓒ최하늘

이사를 생각한지 1년 남짓 됐다. 지금 집은 일원동 대모산 밑에 있는 저층아파트다. 여기서 13년을 살았다. 산 날수보다 훨씬 많이 정이 든 집이다. 처음 이사 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저녁때가 되자 옆집 부부가 생면부지의 우리 부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가보니 아래층 부부와 함께 와인과 다과를 준비해 놓았다. 와인 잔을 들고 간단한 환영사를 한다. “강남의 설악동으로 이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말 그랬다. 이 말에 과장이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이사할 집을 물색하러 다니다 첫 눈에 반해 정착한 동네다. 늦은 가을이었다. 단풍이 붉게 물든 대모산 공원을 따라 길게 뻗은 아파트 진입로. 듬성듬성 자동차가 서 있고 낙엽이 수북하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풍경이 오래전에 본 캐나다 뱅쿠버의 주택가를 연상케 했다.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정겹다.

Ⓒ최하늘

대모산은 이곳의 보물이다. 우리 집 식탁과 등산로 사이 직선거리가 20여 미터밖에 안 된다는 게 나의 자랑거리였다. 대모산은 해발 293미터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아기자기한 지형과 잘 자란 나무가 더 없이 아름답다. 이곳에 오는 거의 모든 이들이 울긋불긋 등산복과 배낭으로 중무장이다. 나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걸으며 속으로 우쭐해진다. 우리 집 정원은 정말 크고 멋지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 13년 동안 거의 거르지 않고 주말마다 그곳에 갔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찾아내 반려견 하늘이와 함께 걸었다. 내 인생에서 그 시간들이 갖는 가치는 실로 크다.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나의 마음은 늘 평화와 감사로 채워지곤 했다.

새로 이사 가는 곳은 위례신도시다. 여기하고는 분위기가 확연히 대비된다. 넓고 깨끗하고 편리하다는 게 그 동네가 내게 준 첫인상이다. 아파트 주위에 생활 편의시설들이 거의 다 모여 있다. 남한산성도 그곳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정이 들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다.

Ⓒ최하늘

이사할 때 제일 힘든 게 ‘버리는 일’일 것이다. 먼저 정든 장소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손 때 묻은 많은 물건들도 내 손으로 내다버려야 한다. 책을 버리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복덕방에 내놓기 위해 집을 청소할 때 이미 한 차례 정리했는데도, 묶어서 문밖에 내놓은 책이 한 차는 됨직하다. 아쉽고 미안하다. 한 시절을 나와 함께한 것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한 시즌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했다.

옷장을 열어 제친다. 몇 달 전에 웬만한 옷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끝이 없다. 이번에는 더 독하게 마음먹고 손을 움직인다. 차마 버리지 못해 박스에 가득 넣어두었던 넥타이들도 쏟는다. 하나하나에 사람과 때의 추억이 배어있다. 하지만 어쩌랴. 지난 30여 년 줄기차게 매고 다녔던 파란색과 자줏빛 타이 등 몇 개만 남긴다.

Ⓒ최하늘

의류수거함에 넣은 넥타이가 200개는 족히 되나보다. 넥타이와 함께 지난날의 기억도 버려지는 것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오랜 세월 나를 대변해주는 물건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이제 넥타이를 벗은 내 목은 홀가분하면서도 시리다.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 둔 베란다 창고는 피난민 수용소 같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던져두고, 존재마저 까마득히 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사 모은 골프용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20여 년 전에 풀세트로 구입한 뒤 지퍼 한 번 안 열어 본 낚시도구도 발견된다. 처치불능이다. 쓸데없이 부린 욕심의 결과일 것이다.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하나를 뒤집으니 수천 장도 넘어 보이는 명함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중 몇 개를 집어 들어 본다. 까마득한 옛날일이다. 누군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한 시절을 함께 한 사람도 있다. 내가 쓰다 남긴 명함들도 무더기로 나온다. 그리움과 아픔이 함께 쏟아진다. 더 이상 명함 내용을 훑지 않고 모두 부대자루에 쓸어 담는다.

Ⓒ최하늘

예전에 책상위에 놓고 썼던 다이어리가 바삐 움직이던 내 손길을 붙잡는다. 주요 약속과 일정들이 난수표처럼 어지럽게 적혀있다. 빨간색으로 써 놓은 성경구절들이 당시의 상황을 대변한다. 연도를 살펴보니 2008년 이다. 그날의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용도와는 상관없이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박스 하나를 여니 수첩이 한 가득이다. 14년 전부터 써 온 온누리교회 새벽예배 설교 노트다. 몇 년 전부터는 스마트폰에 기록했으니, 모아 둔 수첩은 10년 치쯤 되나보다. 훗날 ‘내가 만난 하나님 얘기’를 쓸 때 꺼내 보려고 모아둔 자료다. 다시 10년 뒤를 기약하며 박스에 집어넣는다.

이 집에서 보낸 지난 세월은 내 인생 최대의 격변기였다. 20년 가까이 다닌 국민일보를 퇴직하고, 새로 창간된 아시아투데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총괄전무로 바쁘게 일 한 세월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비전으로 브릿지경제신문을 창간한 것도 이 시즌이다. 나의 서드에이지(제3연령기)를 함께 할 로톡뉴스를 만난 것도 이 집에 살면서다. 그 사이 두 아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이 집에 이사 올 때만 해도 겨우 한 살로 천방지축이던 하늘이는 이제 다리 힘이 줄어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최하늘

일원동 집은 이 모든 사연 속에 지치고 힘든 나를 품어준 안식처였다. 지금은 나의 새로운 시즌을 말없이 축복해주는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 아내는 이곳을 떠나게 돼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결코 그럴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내가 이곳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잘 알기에,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 이사는 내 인생에 새로운 시즌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나의 서드에이지다. 배우는 시기와 일하는 시기를 지나, 자아를 실현할 시기가 된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10여년은 내 인생의 절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옛것들을 모두 비워낸다. 그리고 새로운 꿈들로 그곳을 가득 채운다.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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