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미지의 세계’에 다녀왔다. 미지의 세계는 대학교 때 뭉쳐 다녔던 동기, 선배들이 만든 모임명이다. 각각 이름에 ‘미, 지’가 들어가 우린 ‘미지’가 되었다. 졸업 후 공부하랴 취직하랴 다 같이 모인지도 참 오래됐다. 학부 시절 각자 생일마다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 깜짝 파티하기 바빴던 우리. 그 시절 미지의 세계는 좌절, 이별, 상처를 어루만지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모임 구성원은 유정(有情) 두 명과 무정(無情) 두 명으로 나뉜다. 무정라인은 생일 때 당사자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직접 물어보길 원한다. 또 연락과 소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반면 유정라인은 몰래카메라를 즐기며, 외로움을 잘 탄다. 유정한 사람은 무정한 사람의 무관심에 자주 상처 받았고, 무정한 사람은 유정한 사람을 언제나 피곤해했다.

유정인 중 한 사람인 나는 친구 생일을 핑계 삼아 간만에 선배들에게 깜짝 파티를 제안했다. 한 달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해 숙소부터 케이크까지 준비 완료! 생일 당사자에겐 호텔 무료 숙박권이 생겼다 거짓말했다. 결국 친구를 숙소까지 무사히 데려와 깜짝 파티 성공! 그녀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웃으며 방방 뛰었다. 다행이다. (주인공이 무정한 사람이라 쓸데없는 짓 했다 혼날까봐 좀 무서웠다.)

미지의세계 멤버들 (왼쪽부터) 양지예, 김지현, 김다미, 최미주 Ⓒ최미주

나는 포스트잇을 좋아한다. 친구 오피스텔에 몰래 찾아가 ‘힘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종이를 문 앞 가득 붙이면 너무 행복하다. 나의 이벤트를 보고 활짝 웃을 친구를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그 행위에 아무런 피드백이 없으면 속상하다. 한 번은 친구 결혼 전 예비 남편의 전화번호를 몰래 알아낸 적도 있다. 친구에게 특별한 결혼식 선물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예비 남편, 다른 친구들과 함께 친구를 위한 축가를 준비했다. 결혼식 당일, 우리의 축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친구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몇몇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대충 살라’고 한다. 혹은 ‘에너지가 넘친다’고 할 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 기운 빠진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내가 잘못됐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메마른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사실 십 년 가까이 무정한 특성을 가진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사회의 보편적인 부류인 줄 알았다. 따라서 유정한 사람은 무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감정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온갖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 감정이 풍부했던 사람들이 감정을 없애려 애쓴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래 무뎠던 사람들은 있던 감정마저 비우고 있는 것 같다.

상처받고 싶지 않으면 고통에 무뎌지는 법만 배우면 되지 왜 기쁨마저 쓸모없는 것이 될까? 기쁜 일만 꿈꾸는 내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건가? 머릿속이 복잡하던 찰나, 생일 주인공에게 연락이 왔다.

“야. 여태 다른 사람 생일파티하자고 할 때마다 그런 거 왜하냐고 툴툴대서 미안. 내가 받아보니까 기분 진짜 좋더라. 한창 회사 적응한다고 힘들었는데 고맙다.”
뜻밖의 사과와 감사 선물.

친구가 고맙다고 보내 준 아메리카노와 초코케이크를 먹으며 글을 쓴다. 어릴 땐 시럽 없이 먹을 수 없었던 아메리카노가 이제 쓰지 않다. 하지만 달콤한 초코케이크는 여전히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생각이 정리되고 그동안 축 쳐졌던 어깨가 살아난다. 나는 ‘미지의 세계’ 유정 담당 아닌가?

나는 계속해서 '미지의 세계'의 초코케이크가 되어야겠다.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한 번에 잊게 할 달콤한 초코케이크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남자친구와 이별해 슬플 때, 직장 상사의 잔소리에 마음 울적할 때, 나로 인해 기쁨을 느끼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친구의 메시지를 보니 진심이 담긴 정성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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