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하루 앞둔 25일 여야로부터 비슷한 진단과 우려가 쏟아져나왔다.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것이다. 시민단체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것이 정당정치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후보가 야권을 대표해서 기호 10번을 달고 출마한 것이다. 박 후보는 민주당과 손을 잡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기호2번은 사양했다. 게다가 박 후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양보와 지원까지 받았다. 안 원장 외에도 민주당을 비롯해 민노당 등 범야권의 폭넓은 뒷받침도 받았지만, 안철수 원장에 비하면 오히려 왜소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것이 사실이다. 또 박원순 후보가 실질적인 민주당 후보라고 강조하고는 있지만, 선거 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것인지 의심하는 시각도 엄존한다.
 
이같은 흐름과 시각을 의식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의 틀 속에서 발전되고 완성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변화의 바람은 정당에서부터 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정치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사람들도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책임있는 정치, 정책이 성과로 이어지는 정치가 되려면 정당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요컨대 정치는 정치인과 정당이 해야 한다는 것이고, 서울시장도 정당의 뒷받침을 받는 사람이 맡아야 책임있는 시정을 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이 말한 입장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발언의 취지는 비슷한 것 같다.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이 크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데도 의견차이가 없다.
 
그런 반성은 안철수 교수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떠올랐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박 전 대표도 25일 나경원 후보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가 그동안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많이 자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당정치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가장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은 사실 민주당이었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에 이어 또다시 후보를 내보내지 못함으로써 위상이 훼손되고 ‘불임정당’의 수모를 겪었다. 선거 후에도 민주당의 위상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이 작지 않다.
 
바로 이 점을 한나라당에서는 한껏 비웃고 조롱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2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을 가리켜 곧 삶아질지 모르는 채 솥 안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일컫는 부중생어(釜中生魚)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박원순 신당의 지분요구가 많아지고 민주당은 존재감이 사라져 어쩌면 해체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 시민사회세력 사이의 정면대결의 성격을 띠게 됐다. 이런 상황은 어쩌면 1987년 6월 항쟁상황과도 흡사하다. 당시에도 통일민주당이라는 야당이 있었지만, 6월항쟁은 재야단체가 주도했다. 말하자면 당시 전두환 정권과 재야 민주세력 사이의 정면대결이었다. 역사가 외양만 다를 뿐 되풀이되고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번 선거의 경우에도 민주당이라는 야당이 있지만 상황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6월항쟁 당시에는 야당에 강력한 지도자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강력한 야당지도자도 없다. 결국 그 공백을 안철수 박원순이라는 시민단체 유력인사들이 메운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비판한대로 시민단체 인사들이 시민단체에 머무르지 못하고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불행한 선거이기도 하다. 원론적으로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정부나 정치권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각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때 정치와 국가의 조화로운 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치인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뛰어들었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오죽하면 시민단체가 나서게 됐을까? 과연 시민단체는 앞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또다시 민주당을 어렵게 만들까? 내년 총선과 대선도 시민단체가 주도할까? 그렇다면 정치권은 재차 이합집산을 겪게 될까? 우리 헌정사상 특이한 선거로 기록될 이번 선거전이 끝나면서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투표해서 민심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모두들 투표부터 하고 다음일을 생각해 보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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