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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이 장미꽃을 먹었다 한들[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김호경 | 승인 2019.03.12 11:08

장미가 아름답듯 바오밥나무도 아름답다

2013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를 등반하고 내려온 다음날 탄자니아 아루샤(Arusha)라는 작은 도시 인근의 세렝게티 공원에 갔다. 검은 코끼리들, 귀족처럼 점잖은 기린들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오밥나무였다. 엄청나게 크고 놀랍도록 멋진 바오밥나무들이 무수히 서 있었다. 사파리 차에 앉아(절대 내릴 수 없다) 탄성을 발하면서 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처럼 멋진 나무를 왜 생텍쥐페리는 미워했을까?”

그가 사막에서 만난 –그 사막은 아프리카이다- 어린 왕자의 말에 의하면, 모든 별(지구도 포함된다)에는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이 있다. 씨앗은 어느 날 세상을 향해 싹을 내민다. 장미의 싹이라면 내버려두어도 되지만 바오밥나무의 싹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 거대한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어버리고 결국에는 별을 산산조각 내기 때문이다.

싹이 막 고개를 내밀었을 때는 어떤 나무인지 구별이 어렵다. 바오밥나무조차 장미와 흡사하다. 그러나 구별이 가능한 순간 바오밥나무는 뽑아버려야 한다,고 어린 왕자는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에게 친절히 일러준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아프리카의 바오밥나무를 본 사람이라면 그 나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여! 바오밥나무를 조심하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 부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된다.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왕자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우리들

<어린 왕자>를 흔히 ‘어른을 위한 동화’라 한다. 동화가 아니라 철학서이다. 적어도 3번은 읽어야 이해가 된다. 가까스로 이해한다 해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1909년 터키의 천문학자가 소혹성 B612를 발견했다. 그는 국제천문학회에서 자신의 발견을 훌륭히 증명했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그가 입은 옷, 즉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옷으로(혹은 자동차로)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는 지식과 다르게 행동한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어”라는 말에 감동받는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은 1년에 두 번도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규율을 어기는 것을 짐은 용서치 아니 하느니라”라는 왕의 말을 비웃으면서도 막상 자기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 “네 자신을 심판하거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니라”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 하면서도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에는 게으르다.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그 사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꾼을 비웃으면서도 술을 마시는 사실이 부끄러워 자신을 완전히 잊을 만큼 술을 마신다. 어린 왕자의 모든 말에 공감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2차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다.(왼쪽) 생텍쥐페리와 그의 부인 Ⓒ김호경

나는 위대한 왕자가 될 수 없다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은 모든 것을 숫자로만 파악한다고 비판했다. ‘제라늄 화분이 있는 분홍빛의 벽돌집’을 어른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10만 프랑짜리 집’이라고 말해야 이해한다고 비판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 왕자>에 다양한 숫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6살 때 그린 보아구렁이 그림 2장,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것은 6년 전, 어린 왕자의 고향인 소혹성 B612호, 석양을 하루에 43번 바라본 어린 왕자, 화산 3개, 장미꽃이 지닌 4개의 가시, 5억 162만 2731개의 별을 소유한 실업가, 24시간 동안 1540번 해가 지는 소행성... 그리고 지구에는 엄청난 숫자가 존재한다.

111명의 왕, 7천 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실업가, 750만 명의 술주정뱅이, 3억 1100만 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들, 약 20억 명쯤 되는 어른들, 전기가 발명되기 전 6개 대륙을 통틀어 46만 2511명의 가로등 점화수가 있었다. 3장의 꽃잎을 지닌 볼품없는 한 송이 꽃과 5천 송이의 장미도 지구를 꾸미는 중요한 구성품 중의 하나이다.

이토록 많은 숫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왕자는 5천 송이 장미 앞에서 혼란에 빠진다. 이제까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부자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꽃은 그저 평범한 한 송이 장미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장미 한 송이와 3개의 화산(하나는 불이 꺼졌다)만으로는 위대한 왕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작가는 그 많은 숫자들을 나열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풀숲에 엎드려 울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김호경

마음으로 보는 눈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황금색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바라보면 농부는 부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화가는 그 아름다운 풍광을 캔버스에 담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금빛 머리칼을 지닌 여자를 사랑했었다면 밀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릴 것이다. 그 밀밭에 바람이 분다면 그 바람마저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밀밭과 똑같은 금빛 머리칼을 지닌 여자에게 그대가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여우가 알려준 교훈이다. 친구를 만들려면(상점에서 친구라는 상품을 팔지 않기 때문에) 친구를 길들여야 하고, 그만큼 참을성 있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사랑에 길들여지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여우의 말에 따르면 행복의 비밀은 아주 단순하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옷차림 때문에 국제천문학회에서 자신의 발견을 입증하지 못한 천문학자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마음으로 보는 눈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장미꽃이 소중한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기울인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막의 아름다움도 깨닫지 못한다. 그 어딘가에 샘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린 왕자는 그 사실을 알려준다. 지구에 처음으로 온 그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에 따라 천지가 온통 뒤바뀌게 될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의 이 말은 생텍쥐페리가 인류에게 던져준 숙제이다. ‘한 마리 양’은 무엇이고, ‘한 송이 장미꽃’은 무엇이고, ‘먹었다’는 행위는 무엇이며, ‘천지’는 무엇이고, ‘뒤바뀐다’는 말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어렵다. 3번을 읽고나면 어렴풋이나마 가늠될 뿐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철학서이다. [논객닷컴=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1940년 봄, 독일군은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손에 넣었다. 유럽에서 사실상 남은 땅은 영국과 프랑스뿐이었다. 프랑스는 육군 강국이었으나 독일의 전격전에 밀려 패배했고 6월 10일 파리를 무방비도시(Open City)로 선언했다. 필립 페탱(Philippe Pétain) 원수는 6월 21일 항복문서에 조인한 뒤 비시(Vichy)에서 친독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반면 드골(Charles De Gaulle)은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프랑스(La France Libre)를 세웠다.

프랑스가 항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문화재의 보호였다. 만일 프랑스가 끝까지 항전했다면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해온 아름다운 문화 유적들은 모두 파괴되었을 것이다. 또한 30일의 전쟁 동안 독일군이 3만 5천명의 전사(실종)자를 낸 것에 비해 프랑스군은 12만명이 전사(실종)했고 24만명이 부상당했다.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항복을 결정한 페탱은 훗날 역사의 죄인으로 내몰렸고, 드골은 항독 영웅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과연 누구의 행동이 옳았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2. 생텍쥐페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는 1943년 4월, 튀니지의 라마르사(La Marsa) 기지에서 미 제7군에 소속되어 전투기 조종사로서 2차대전에 참전했다.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코르시카 상공에서 독일군 전투기에 피격되어 바다로 추락해 사망했다. <어린 왕자>가 출간된 지 1년 3개월 만에 4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호르스트 리페르트라는 독일 공군 조종사는 <생텍쥐페리, 최후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생텍쥐페리의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고백했다.

3. <어린 왕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출간된 외국책이다. 한때 20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를 간행했다.

4. 소위 말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에는 트리나 폴러스(미국)의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 쉘 실버스타인(미국)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J.M. 데 바스콘셀로스(브라질)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My Sweet Orange Tree), 파트리크 쥐스킨트(독일)의 <좀머씨 이야기>(Geschichte von Herrn Sommer), 구리 료헤이(일본)의 <우동 한 그릇>,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 호아킴 데 포사다(미국)의 <마시멜로 이야기>(Don't Eat the Marshmallow Yet) 등이 있다. 모두 3시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미치 앨봄(미국)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도 권한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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