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개그맨 김병만씨가 출연하는 ‘정글의 법칙’이란 TV프로가 있습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와 밀림 등지에서 맨몸으로 생존해가는 과정을 매우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 일행이 어딜가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집짓기'라는 점입니다. 나뭇가지가 됐건, 바나나 잎이 됐건 비 피하고 잠 잘 공간을 서둘러 마련하는 걸 볼 수 있죠.

호모 사피엔스도 추위와 맹수를 피하기 위해 맨 먼저 집부터 지었을테니 자연스런 생존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료사진@오피니언타임스

이즈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란 말 대신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표현을 제법 씁니다. 피동 명령어로 보일 수 있는 ‘받으세요!’보다 상대가 스스로 복을 짓기 바라는 능동권유어(지으세요!)가 더 부드럽고 정감있게 다가가기 때문일 겁니다.

‘짓다’(作)란 말엔 이처럼 ‘만든다’는 부가가치(생산)의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조상들은 창조적인 동작과 행위에 ‘짓다’란 말을 붙여줬습니다. 특히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衣食住) 활동에 ‘짓다’란 표현을 집중선택(?)해 쓴 점, 주목할 만합니다.

조상들은 움집부터 시작해 다양한 집(住)을 ‘지어’왔습니다. 농사도 ‘짓고’ 수확한 쌀로는 밥(食)을 ‘지어’ 먹었습니다.  옷(衣)도 '지어서' 해입고... 이쯤되면 의식주와 '짓다'란 동사를 떼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집이란 단어도 ‘짓다’에서 온 게 아닌가... ‘짓는 것’ ‘지은 것’을 지칭해 지입>집(住)으로 변했으리란 추정이 가능하죠.

새들은 풀가지를 모아 둥그렇게 집(둥지)을 짓습니다. 둥그렇게 지은 집(둥근+집)이 둥집>둥지로 변했다는 게 통설이죠. 지붕 또한 ‘집+웅(접미어)’ ‘집(家)+우(上)’에서 왔다는 견해들이 있고 보면 역시 '짓다'가 모어(母語)라 할만합니다.

극한 생존프로에서 김병만씨 일행이 얼기설기 집을 짓고 나서 하는 일이란?

‘먹거리 확보’입니다. 끼니를 잇기 위해 열매을 따든, 물고기를 잡든 수렵어로식 먹거리 채집에 나섭니다. 농사는 인류가 수렵어로 시대를 거쳐 개발한 먹거리 확보방식이죠. 

흔히 농사짓는 논의 넓이를 가늠할 때  ‘마지기’ ‘섬지기’라 부릅니다.

“보통 논 한마지기는 200평이다. 볍씨 한 말을 모판에 뿌려 그 모로 모내기할 만한 면적일 경우에는 한 마지기, 두말을 뿌릴 때는 두 마지기라하고 한 섬을 뿌릴 만한 논이면 한섬지기라 하고...”(국어어원사전/서정범)

‘마지기’ ‘섬지기’의 ‘지기’ 역시 '농사짓다’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 거둔 쌀로는 밥을 ‘지었’으니 식(食)문제 해결도 ‘짓기’였습니다. 밥의 높임말인 ‘진지’가 ‘밥을 지은 것’을 높여 부른 데서 왔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틈틈이 바느질을 해가며 옷(衣)도 ‘지어’ 입었습니다. 바느질의 ‘질’ 또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짓는 행위’를 지칭했습니다.

보리흉년이 해걸이를 하던 시절엔 의식주(衣食住) 해결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이  ‘의식주 해결’에 공히 ‘짓기’란 말을 갖다 쓴 조상들의 언어감각이 새삼 돋보입니다.

의식주에서 비롯된 ‘짓기’는 ‘글짓기’나 ‘이름짓기’ ‘짝짓기’ 등으로 쓰임새가 넓어집니다. ‘약을 짓다’ ‘무리를 짓다' '매듭을 짓다’ ‘죄를 짓다’의 ‘짓’ 역시 만든다는 의미.  ‘짓거리’나 ‘ 몸짓’ ‘손짓’의 ‘짓’ 역시 동작(動作)을 뜻한다는 점에서 ‘지기’의 외연확장으로 봅니다.

의식주 행위에 필수적인 동작들(삽질 지게질 낫질 쟁기질 써레질 괭이질 호미질 대패질 못질 절구질 바느질...)에 붙였던 ‘질’ 역시 ‘짓기’와 ‘짓’의 또 다른 변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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