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서장 수준이 아니다. 더 위다. 몸통을 찾아야 한다.”

여론은 승리와 정준영으로 시작된 수사의 칼날이 더 높은 곳을 겨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범죄의 핵심을 찾아 엄벌하고 재발을 막아야 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불법 촬영 범죄에 유착되어 있는 공권력의 고리를 찾아내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처벌한다 하더라도 성폭행 피해 영상을 공유하고 시청하는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일부 혹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뿌리내려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재발 방지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가해를 막기 위해서는, 위를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내려 우리 주변을 함께 살펴야 한다.

Ⓒ픽사베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는 범죄 피해 영상을 찾는 검색어가 상위권을 유지했다. 사건 자체도 그러했지만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 또한 남성 중심의 문화가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한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사람들일까? 척 보면 알 수 있는 모습의 범죄자일까? 전혀 아니다. 남성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사건은 술자리에서 혹은 메신저를 통해 가십으로, 유머로 재소비된다. 피해자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는다. 지적이라도 하면 왜 이렇게 민감하냐, 웃자고 한 이야기 아니냐는 등의 핀잔을 받기 일쑤다.

남성 권력 중심의 사회가 가진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특정 인물이나 현상에 문제의 화살을 돌렸다. 특별한 사람이 일으킨 문제이지 남성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때에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살인사건이라는 논리로 방어했다. 검찰은 “정신질환을 가진 김 씨가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불특정 여성 대상 범죄’라는 말은 외면한 채 ‘정신질환’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번엔 화살이 유명 연예인과 지인들을 향한다. 더 나아가 소속사와 경찰 등을 지목한다. 하지만 위를 향한 수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몸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몸통은 특정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기심으로라도 불법 촬영 영상을 찾아본 사람, 피해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 사람, 이에 편승하여 피해자를 추측하는 기사를 내어놓은 언론 모두 몸통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겉으로 드러난 가해자들에게 손가락질을 가하고 있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일이 발생한 게 아니다. 유착이든 탈세든 마약이든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여성을 공동의 목적 혹은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화가 이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는 자들은 여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고 여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집단에 돈을 주었다. 이것이 상업화에 성공하자 각종 이권과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이 이를 묵인하거나 이용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핵심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회 전반에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 없이 타인만을 향해 엄벌을 촉구하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꾸준한 관심과 개선 요구는 우리 모두의 임무이며 필자 또한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장자연 사건이 묻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한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역사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건을 꺼내어 드는 일을 반복하며 신뢰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 권력 범죄의 뿌리는 같다. 어떤 사건이든 끝까지 파내면 같은 지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다른 사건이 묻힌다며 수사의 방향을 돌리려는 그 발언들 때문에 눈에 보이는 가지만 꺾는데 그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뿌리 뽑을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리 또한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는 몸통이고 뿌리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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