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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는, 노루귀[김인철의 들꽃여행]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15 11:55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

[논객닷컴=김인철] 미세먼지가 우리의 일상을 공격하기 이전에는 저 하늘의 공기가 그처럼 맑고 투명한지 몰랐습니다.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걱정도 않고 늘 상쾌한 공기를 향유하리라 방심했다가 한마디로 큰코다쳤습니다. 단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자연 상태의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알게 됐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모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평소 실감하지 못했던 공기의 깨끗함을 미세먼지가 알게 하듯, 봄 햇살의 빛나는 광채를, 번득이는 찬란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꽃이 있습니다. 꽃줄기 끝에 지름 1.5cm 정도의 동그란 꽃까지 달고 선 식물체 전체의 키가 10cm 정도에 불과하지만, 갈잎 사이에 불쑥불쑥 솟아나 부서질 듯 반짝이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꽃줄기와 꽃을 감싸고 있는 3장의 총포(꽃대 끝에서 꽃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에 수북하게 난 하얀 솜털에 봄 햇살이 가득 쏟아지기라도 하면 매일같이 눈으로 보고도 채 알아보지 못했던 태양광의 신비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올 3월 7일 전북 변산반도에서 만난 노루귀.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 등 제주에서 접경 지대까지 전역에서 ‘봄 산의 주인은 우리’라고 외치는 듯 연이어 피고 지는 10여 종의 ‘바람꽃’류에 맞서 일당백(一當百)의 기개로 피는 노루귀의 흰색과 분홍색 꽃이다. Ⓒ김인철
Ⓒ김인철

노루귀. 눈을 헤치고 피어난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니 설할초(雪割草)니 하는 거창한 한자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꽃이 먼저 피고 난 뒤 바닥에 바짝 붙은 채 둘둘 말려 나오는 삼각형 모양의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해서 노루귀란 우리말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 잎 모양이 우리 몸속의 간(肝)과 닮아 보였나 봅니다. 해서 학명 중 속명으로 간을 뜻하는 헤파티카(Hepatica)를 얻었고, 영어 이름도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로 지어졌습니다.

봄 햇살이 얼마나 찬란한지 한눈에 보여주는 노루귀의 빛나는 솜털.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송이의 노루귀를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김인철
Ⓒ김인철

전초(全草)라고 해봐야 앞서 말했듯 키 10cm, 잎 5cm, 꽃 지름 1.5cm 정도에 불과해 유심히 살펴봐야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가냘픈 풀꽃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꽃 색과 깜찍하고 앙증맞은 생김새는 ‘봄 야생화의 대표 주자’로 꼽힐 만큼 환상적이고 매혹적입니다. 꽃 색은 흰색에서부터 홍색, 청보라 색에 이르기까지 그 변이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홍색도 연분홍에서부터 진홍색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청보라 색 역시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색에서부터 코발트블루까지 다양합니다. 단순한 흰색도 있지만, 미색에 가까운 흰색도 있습니다.

자연이 빚어내는 색감의 극치를 느끼게 하는 노루귀의 청색 꽃. 빈센트 반 고흐의 저 유명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의 하늘색을 능가하는 듯싶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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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꽃잎처럼 보이는, 6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넘는 색색의 조각이 실제로는 꽃받침잎입니다. 꽃잎은 아예 없고, 대신 수술과 암술의 수가 각각 수십 개에 이를 만큼 많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꽃 색 못지않게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드는 건 꽃줄기와 총포 등에 난 무수한 잔털입니다. 오래전 영랑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을 노래했지만, 볕 좋은 날 노루귀의 하얀 솜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봄 햇살을 본 이라면 그 황홀한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노루귀란 한글 이름을 낳은 노루귀의 삼각형 모양의 잎. 꽃이 먼저 핀 뒤 땅에 바싹 붙어 둘둘 말려 나온다. Ⓒ김인철
Ⓒ김인철

노루귀의 또 다른 장점은 그 어떤 야생화보다도 개체 수가 풍부하고, 또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자생지 또한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강원·경기 접경지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해서 누구든 관심과 열정만 갖고 있다면 멀리 이름난 자생지를 애써 찾아가지 않더라도, 부지런히 동네 뒷산에 올라 등산로 주위를 살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르면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에도 꽃이 필 만큼 개화 기간도 깁니다. 한두 송이가 피기도 하지만, 많게는 수십 송이가 한데 뭉쳐서 피는데, 산비탈 여기저기에 만개한 노루귀는 붉은색 루비나 파란색 사파이어가 박힌 듯 화려합니다. 올봄의 경우 멀리 대전 이남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지만, 서울·경기 인근 중부 지역은 이제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 초·중순까지 이어집니다.

연홍색 노루귀가 피고 지는 가운데 저 멀리 아스라이 아지랑이가 일며 연분홍 봄날이 오고 간다. Ⓒ김인철

유사 종으로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섬노루귀(H. maxima Naka), 그리고 꽃과 잎이 함께 나오며 노루귀나 섬노루귀에 비해 크기가 작은 제주도 자생 새끼노루귀(H. insularis Nakai)가 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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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atomz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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