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누군가 내게 일해라, 절해라는 게 싫다. 일은 피곤하고, 절은 무릎 아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했기에 나는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최고, 최선, 최적들의 중심의 바깥을 산다. 인사이드의 왕자는 강백호에게 맡기고 나면, 나는 감나라, 배나라의 고요한 왕, 갑(甲)이다.

일단은 퉁쳐서 ‘반(反)최선주의’라고 명명하자. 주의(主義)는 주의(注意)가 필요할 텐데, 주의(注意)를 빼야 하는 주의(主義)는 이상하지만, 내 전 여친이 주희도 아니고 희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선주도 아니니 뭐 어떠냐 싶다. 반최선주의는 이미 많은 젊은이들은 연애를 포기함으로써 꽤 실천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이름의 여친이나 남친을 갖고 있다면, 축하한다.

포기, 갓 담근 배추김치처럼 맛있는 말이다. 우리가 을병(乙丙)으로 전락하는 을병(乙病)에 전염되는 것은 최선주의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적 모형이 아니라 만족 모형인 것이다. 배추김치가 비싸면 깎두기, 깎두기도 비싸면 단무지를 먹어도 되는 무난한 취향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픽사베이

최선과 최선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갑이 있다. 육지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감나라, 배나라의 방위 전략이다. 내 섬의 월세는 17만원이다. 관리비도 없다. 중심가에서 보면 공원으로 막혀 외지다. 방도 좁고, 주차 공간도 협소하다. 덕분에 공실이 많다. 계약 만료에 전전긍긍하는 쪽은 건물주다.

최선을 포기한 대신 얻는 게 많다. 층간/벽간 소음의 시대, 나는 최고의 이웃, 공실을 얻었다. 창을 열면 옆 원룸이 아니라 숲이 있다. 아침에는 새가 산뜻하게 시끄럽고, 초여름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시리다. 게다가 남향이다. 사실, 샛길을 이용하면 지하철 승강장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니 그리 먼 섬도 아니다.

괜찮은 아파트를 살 돈은 못 모았다. 전세금이야 있지만 계약 만료에 따른 스트레스와 이사 비용,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의 구매/유지 비용을 생각하면 뭐 굳이. 구질구질 1년마다 계약을 연장했더니 올 여름이면 이 섬에 정착한 지 10년이다. 보일러가 고장나든, 에어컨 가스가 떨어지든 내 알 바 아니었다. 집주인에게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었다.

이민하면 만족 모형이 최적 모형을 수렴하는 게 아닐까? 싼 게 비지떡인 시대가 저물어 가는 덕분이다. 싸도 기본은 했다. 요새 비지떡은 백종원이 만들어 가성비가 좋다. 기초적인 솔루션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나는 샤오미 홍미 노트5를 반 년 넘게 쓰고 있다. 홍미 노트5는 내가 생각하는 스마트폰의 본질에 충실했다. 인터넷, 카톡, 음악, 동영상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다. 그 가격에 지문 인식까지, 감사하다. 배터리는 대만족이다.

삼성에서 접히는 스마트폰을 발표했다. 놀랍고 자랑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기술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선풍기든, 옷이든, 신발이든 기본 품질이 좋아졌다. 비지떡의 가격은 데코나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캐비어 몇 알에서 차이 날 뿐이다. 본질만 취하면 내가 물건을 모시며 을의 마음을 자처할 일은 없다. 애초에 소유는 갑(甲)옷이 되지 않는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이 김연아를 땄듯, 내 물건은 내게 충실해야 한다.

노력이 미덕인 시대도 갔다. 노력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은 근력이 생산의 원천인 시절에나 통했다. 기술의 발달로 사회는 충분한 잉여물을 생산해냈다. 중요한 건 생산이 아니라 분배다. 누구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차피 노력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모두의 노력은 과잉 경쟁으로 사회와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1인당 GDP 3만 달러, 반최선주의가 빅뱅하기 괜찮은 조건이다. 노력이 쌓은 TOP지상주의는 끝물에 다다랐다. 물론 여전히 손흥민, 삼성의 대성을 편애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군상들도 하루하루, 그럭저럭 견뎌낼 만하고, 그럭저럭 행복할 수 있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붙여 먹어도 행복의 소소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유튜브, 넷플렉스, 애니메이션, 게임, 아이돌 등 빈대떡의 재료는 싸고 풍성해졌다.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지용을 발휘할 때다. 대충 살아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타오른다.

요즘 열심히 살지 말자는 내용의 책들이 많이 보인다. 2003년에 발표된 『삼미슈퍼스타자의 마지막 팬클럽』은 이 기류의 선구자다. 자본주의에서 촉발된 과잉 노력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미 2030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부모보다 못 살 최초의 세대라는 것을 안다. 해도 안 된다는 걸 체험했다. 그러니 포기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적당히 사는 백수는 염치없는 것도 아니다. 하여간 이런들 어떠하지도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는 것만이 삶을 향한 일편단심이다. 문제는 최선의 프레임에 갇힌 을의 마음이다. 최고를 향해 최선을 다해서 최적화 되려는 한, 우리는 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포기는 바뀐 현실에 적응하는 생물학적 본능이다. 물론 연애 포기는 반생물학적이다. 그러나 이도 최선주의 저주 때문이다. 최선의 상대를 만나려는 습성을 버리면 된다. 26년 간 우승 못한 프로 스포츠 팀을 응원하지만 부산 갈매기, 주황 봉다리, 이대호는 만족할 만했다. 그렇듯 이제는 최선주와 이별하고 차선주와 썸을 탈 때다. 홀쭉한 지갑은 잊고 집값으로 만든 갑갑한 수갑을 벗어 차선주의 장갑을 벗은 맨손을 잡을 때, 지갑과 상관없이 반값인줄 알았던 인생이 철갑처럼 든든하고 반갑게 인사할 것이다. 갑이 된 우리에게 -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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