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고구려POWER 15]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착각했다. 그들은 주변의 종족을 ‘바르바로이(Barbaroi)’라며 우습게 여겼다.

‘바르바로이’는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 사람에게 주변 종족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강아지처럼 ‘바르바르’ 중얼거리는 하찮은 종족이었다.

이 ‘바르바로이’는 로마시대로 이어졌다.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게는 주변 종족이 ‘바르바로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 말은 ‘야만인, 미개인’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비유럽’은 야만종족이고, 미개종족이었다.

Ⓒ픽사베이

고대 중국 사람들도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착각했다. 나라의 수도까지 세계의 한가운데에 두려고 했다.

주나라 때 수도 ‘장안’이 그랬다. ‘장안’의 위치는 국토의 한복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낙양’을 제2의 수도로 삼았다. 낙양의 위치가 국토의 거의 정중앙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낙양 동남쪽에 ‘양성’이란 곳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곳을 ‘지중(地中)’ 또는 ‘토중(土中)’이라고 불렀다. 이곳이 정확하게 국토의 한가운데였기 때문이다. 지중과 토중이라는 명칭은 ‘세상’의 한가운데라는 뜻이었다.

동․서양의 구분에서도 그랬다.

원나라 때에는 복건성의 ‘천주’라는 곳을 동양과 서양의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의 동양은 필리핀과 자바였고 서양은 인도 주변이었다.

명나라 때는 ‘광동’을 기준으로 동․서양을 구분했다. 청나라 때는 유럽을 대서양, 인도를 소서양, 대만과 필리핀 등을 동남양, 인도차이나, 자바 등을 남양이라고 했다.

또 일본은 동양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기준으로 동양은 일본뿐이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일본사람들을 ‘동양귀(東洋鬼)’라며 기피하기도 했다. ‘동양귀신’이라는 뜻이다.

세계의 중심인 중국은 ‘천하’도 5개 지역으로 구분했다.

황제가 사는 도성에서 가까운 지역을 ‘전복(甸服)’이라고 했다. 전복은 황제의 직할지를 의미했다. ‘복(服)’은 글자 그대로 ‘복종한다, 따른다’는 의미다.

전복의 500리 바깥에 인접한 지역은 ‘후복(候服)’이었다. 후복은 제후들의 영토라고 했다.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는 제후는 드물었다.

후복을 지나 중국의 문명이 전파된 지역을 ‘수복(綏服)’이라고 불렀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중국 문명권’이었다.

그렇지만 아쉬웠다. 황제의 ‘끗발’은 더 멀리 뻗쳐야 좋았다. 그 필요에 따라 ‘요복(要服)’을 추가했다. 요복은 ‘이민족’이 사는 지역으로 황제에게 복종할 필요(要)가 있는 곳이었다. 또는 복종 좀 해줬으면 싶은 곳이었다. 황제에게는 요복에서도 조공을 거둘 수 있는 권위가 필요했다.

그 요복마저 지나면 중국의 영향력은 더 이상 닿지 않았다. 이곳을 ‘황복(荒服)’이라고 했다. ‘황폐한 땅’이라며 ‘황(荒)’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야만족들이나 사는 곳이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야만족을 ‘이(夷)‧융(戎)‧만(蠻)‧적(狄)’이라고 불렀다. 소위 ‘화이사상(華夷思想)’이었다. 자기들 멋대로 할 수 없으니까 아예 ‘오랑캐’ 취급을 해버린 것이다.

그 대황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가 알다시피 고구려였다. 물론 발해도 대황을 영토로 했다. 우리 민족의 한 갈래인 여진족은 이곳에 청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중국은 이 대황을 굴복시키려고 여러 차례 싸움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길 재간이 없었다. 수나라는 고구려와 싸우다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라고 받드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다시는 고구려와 싸우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청나라는 중국 전체를 지배했다. 대황은 감히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랬던 중국이 오늘날에도 착각을 하고 있다. ‘신(新)실크로드’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하겠다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중국과 로마 이외에는 ‘문명’이라는 게 없다는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명은 많았다. 그리스가 주변 종족을 ‘바르바로이’라고 멸시한 것처럼, 페르시아 사람들은 문명세계를 ‘이란’이라고 불렀다. ‘이란’이 아닌 야만족이 사는 곳을 ‘도란’이라고 불렀다. ‘인더스 문명’은 또 어떤가. 중국은 21세기에도 ‘오만한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실크로드’라는 용어 자체도 희한하게 등장했다.

19세기 말쯤, 리히도 호헨이라는 독일 지질·지리학자가 중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중국의 토지와 산물 등을 조사해서 본국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열강’에 뒤늦게 참여한 독일은 중국의 어디를 차지하는 게 좋을까 알고 찾아보고 싶었다. 그 조사를 위촉받은 것이다.

조사를 마친 리히도 호헨은 ‘히나(중국)’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 ‘자이딘 스트라쎄’라는 말을 넣었다. ‘비단길’이라는 뜻이다.

리히도 호헨이 사망한 후 그의 제자가 영어로 ‘실크로드’를 저술했다. 이를 계기로 실크로드는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아니라 당연히 ‘있었는 길’이 되고 말았다.

실크로드가 ‘있었던 길’이 되면서, 동과 서의 중간에 있는 ‘광대한 면적’은 단순히 ‘비단이 통과한 곳’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 광대한 땅이 단지 점이나, 선(線)으로 간주되고 만 것이다.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杉山正明) 지음, 이진복 옮김>

그런데 우리는 그 실크로드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철(鐵)의 실크로드’다. 남북의 철도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철도 실크로드’를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고쳤으면 싶은 ‘철의 실크로드’라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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