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이젠 친구들 모임에 가면 집 늘린 이야기나 골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에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그런 화제가 늘 불편했습니다.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도 의도적으로 삼갑니다. 관심이 없어진 게 아니라 저처럼 ‘정치 편향적’으로 살아온 친구에 대한 배려인 셈입니다. 전엔 곧잘 다투고는 했거든요.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 퇴직을 하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고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원숙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엊그제 모임에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꿈을 꾸고 파종하고 열매를 기다리는 미래가 아니라,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미래였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의 안부를 묻던 중, 그가 요즘 요리학원을 다닌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요리학원? 새삼 음식점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노후에 밥이라도 제 손으로 차려 먹기 위해서라네.”
“노후라니? 그 친구 아주머니 건강하신데 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나중에 혼자 있을 지도 모를 때를 대비해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운다는구먼.”

별 일이 다 있다 싶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보면 되지 학원까지 다니며 요리를 배운다니 조금 별스럽게 들릴 수밖에요. 이야기를 듣던 한 친구가 고백이라도 하듯 말했습니다.

“나도 라면은 끓여봤는데, 밥은 해본 적 없어. 전기밥솥이 있어도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 마누라 죽으면 나도 꼼짝없이 굶는 거지 뭐.”
“자네도 별종이구먼. 아주머니 어디 가실 땐 어떻게 해결하는데?”
“아이들이 해주거나 애들마저 없으면 밖에서 사먹지 뭐.”
“그게 오죽하겠나? 어지간하면 밥 하는 거 배워. 찌개나 국 두어 가지는 스스로 만들 어보고. 해보면 일도 아니야.”

다른 친구는 그보다 더 심각한 고백을 했습니다. 전부터 집에 들어가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부인이 ‘받들어 모신다’고 소문난 친구입니다.

“나는 주방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네. 남자가 어떻게 주방에 서서 밥하고 설거지를 하나?”
“허! 왕조시대 사대부가 여기 계시는구먼. 자네 그러다가 나중에 큰일 나. 황혼 이혼이 꼭 남 얘긴 줄 알아?”

그 정도면 이제 중년 사내들의 수다입니다. 노후에 밥 굶지 않고 사는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친구가 제법 근거 있는 현실을 전해줬습니다.

“고독사하는 중년 이후 세대가 대부분이 남성이라네. 그런 통계가 있어. 남자가 여자에 비해 혼자 사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증거지. 그리고 말이 좋아 고독사지, 영양부족이나 심지어 굶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구먼. 아이들이 없거나 따로 사는 상태에서 부인을 먼저 보내면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가는 거지 뭐.”

Ⓒ픽사베이

모두들 심각한 얼굴이 됩니다. 결국 화제는 남 얘기만 같았던 고독사로 집중됩니다. 고독사의 사전적 의미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고독한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말이라고 하지요. 가족이나 사회에서 격리돼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기 때문에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삭막한 시대를 한탄하지만, 고령화‧핵가족화가 가속되는데다 실직이나 이혼 등의 이유로 주변과 관계를 끊고 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고독사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상 연령층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노인들의 이야기였다면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젊은 층의 고독사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50대 1인 가구의 증가가 고독사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1인 가구의 인구·경제적 특징 분석'에 따르면 2006~2016년까지 50대 1인 가구의 증가율이 123.1%로 가장 높았습니다. 50대 1인 가구는 이혼‧사별 등의 비자발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고 사회적 고립감이 심하기 때문에 고독사 비율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따라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도 고독사 고위험군에 있는 계층의 관리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독사 예방 안전돌보미 발대식’ ‘고독사 Zero 프로젝트 사업 운영’ ‘고독사위험군 사랑의 반찬 나눔’ ‘독거노인 사랑잇기사업’, ‘1인가구의 고독사 예방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등 지자체마다 쏟아내고 있는 대책은 일일이 손꼽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스스로 고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고독사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병 한 둘쯤은 달고 사는 50대 이후에게 사회적 단절은 그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결국 대책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관계망을 꾸준히 만들고 유지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족과의 단절은 극도의 상실감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제가 친구들과 나눈 대화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스스로 식사 정도는 챙겨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막상 해보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평생 고생한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인다고 생각하면 그리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한 분은 퇴직 후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혼 전까지는 주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던 분입니다. 퇴직한 뒤에도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앉아서 받아먹다가 결국 황혼이혼이라는 불행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친구들 모임으로 돌아갑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친구들 얼굴에 결의 같은 게 그려졌습니다. 그중 몇몇은 분명히 다음 날 아침 주방에 얼씬거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