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지난달 이맘때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환호했다. 3월 1일 금요일이 빨간 날인 덕분에 힘겨운 주5일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1일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이것은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삼일절은 그저 하루 더 쉴 수 있고, 하루 더 늦게 출근, 등교할 수 있는 하나의 휴일에 불과했다. 3월 1일이 되기 며칠 전 독립운동에 앞장선 유관순 열사의 영화를 관람하고 왔기 때문일까. 아파트에 매달린 태극기가 채 5개도 되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영화 '항거' 스틸컷 Ⓒ네이버영화

일제강점기하에 독립운동을 했던 과정을 영화화한 사례는 꽤 있다. <암살>, <밀정> 등 충무로를 주름잡는 감독들의 영화가 개봉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영화 속 화려한 출연진이 흥행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위와 같은 영화들이 상업적인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액션장면과 총격전, 극적인 줄거리가 대중들에게 인기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온전히 역사적인 한 인물에 집중한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가 남달라 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주 잘 짜인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잔잔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장면 하나하나 더 깊게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듯했다. 

<항거>는 1919년 3.1 만세 운동 후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여성이 지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나이가 든 중년 여성과 아이를 밴 여성, 기생, 아직 어린 학생까지 편히 앉을 수조차 없는 8호실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는 만세를 외친 것을 잠시 후회하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점차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지지한다. 이 영화는 흑백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조민호 감독이 유관순 열사의 피가 붉게 표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유관순 열사 역을 맡은 고아성 배우도 깊이 동감했으며 영화 촬영 시작에 앞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어떤 마음으로 역할에 임할 것인지 다짐했다고 전해진다. 무겁고 마음 아픈 이야기이지만 영화를 보며 유관순 열사가 얼마나 밝고 장난스러운 인물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가족들과 행복했던 시절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며 묘사되는데 이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개봉 며칠 후 한 딸과 <항거>를 관람한 한 중년 남성이 상영관 앞으로 나가 양해를 구했다.
“여러분만 괜찮으시다면 다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남성은 이렇게 말하고 크게 만세를 소리쳤다. 그를 따라 상영관을 빠져나가지 않은 다른 이들도 만세를 불렀다.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고 영화 한 편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이 광경을 촬영한 영상이 SNS에서 올라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거는 쉽게 잊힌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얼마나 쉽게 잊히고 있을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으로 더욱 뜻깊은 해이다. 찬란했던 3월이 어느새 또 저물어가고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영화 <항거 : 8호실 이야기>를 보는 건 어떨까.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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