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세상읽기] 정치판 싸움에 휘말린 KT

[논객칼럼=최진우] 한동안 잠잠하던 황창규 KT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 정확히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격을 주도하며 황 회장을 코너로 몰아세우고 있다.

JTBC 썰전 출연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황 회장이 정치권 인사, 고위공무원 출신 등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하고 민원해결 등 로비에 활용했다고 주장하며 관련문건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황 회장이 회삿돈으로 정치권 줄대기와 로비에 나선 걸로 보이기 때문에 엄정한 수사를 통해 전모를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퇴진을 촉구했다.

여당의원이 특정 기업의 CEO를 겨냥해 로비증거라며 문건까지 폭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공격 자체가 황 회장의 연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 여권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픽사베이

황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17년간 재직하며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쓴 주역이다.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를 시작으로 차세대 메모리개발총괄 상무이사,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 겸 전무이사,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등 굵직한 보직을 맡으며 지금의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초석을 닦은 IT전문가다.

삼성전자에서 나온 후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 성균관대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2014년 1월 KT회장에 취임했다. 2017년 3월에는 재임 중 실적을 토대로 CEO추천위원회로부터 단독후보로 뽑혀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황 회장은 문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경제인 명단에 빠져 ‘정권에 찍혔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박근혜 정권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권오준 당시 포스코 회장과 함께 동반퇴진 압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황 회장은 버텼다. 지난말에는 서울 충정로 KT통신국 화재가 발생해 국회로부터 퇴진압박을 받았고 정치권 ‘쪼개기 후원금’과 관련해선 경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황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정치권의 압박이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올해초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폐막 직후 열린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임기만료와 함께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연임 관련 질문이 나오자 “통신 기업을 6년간 이끈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며 “젊고 유능한 인재가 경영을 맡기를 바란다”고 말해 퇴진을 예고했다.

그의 퇴진 예고에도 이번 이철희 의원의 KT 로비설 문건공개에서 보듯 여권은 그를 그냥 두고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황 회장이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회장 퇴진을 거부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KT는 2002년 3월 한국통신에서 지금의 KT로 사명을 바꾼 이후 CEO들이 연임 직후 줄줄이 불명예 퇴진을 해온 흑역사를 갖고 있다.

민영화 직후 첫 CEO였던 이용경 전 사장은 2005년 연임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노무현 정권 때 연임에 성공한 남중수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 수사로 구속돼 불명예 퇴진했다. 이명박 정부때 CEO에 오른 이석채 전 회장 역시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배임, 횡령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 회장까지 이번에 중간에 물러나면 3연속 불명예 퇴진기록을 이어가게 되는 셈이다. 황 회장이 정치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CEO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은 이런 흑역사를 끊겠다는 개인적 소신과 각오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역대 KT 회장들이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기형적인 지분구조 때문이다. 현재 KT의 최대주주는 12.19%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KT 자사주가 6.12%, NTT도코모가 2.22%를 갖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은 49%이고 나머지는 소액주주들이 보유 중이다.

민영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황 회장 스스로 정치권과 확실히 선을 긋지 않아 오해를 자초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황 회장을 직, 간접으로 겨냥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여권의 퇴진압박은 기업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나쁜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KT와 관련돼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하나같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란 점은 여권이 주도하는 파상적 공세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김성태 한국당 의원 자녀의 KT 채용비리 의혹에 이어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이번 황 회장 로비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린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홍문종 의원 등은 음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법무부장관 시절 아들이 KT법무실에 근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황교안 대표는 페이스북에 “아들마저 음해 세력들의 타깃이 됐다”며 “목적을 위해서는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검은 결속과 비겁한 선동”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홍문종 의원 역시 보도자료를 내고 “측근의 KT 자문위촉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최진우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