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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은 멋졌다[김동진의 글로 보다]
김동진 | 승인 2019.03.28 05:23

[청년칼럼=김동진] 영화 <캡틴 마블>의 주인공으로 브리 라슨이 낙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일부 남성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사각턱에 저렇게 못생긴(?) 여자가 히어로물의 주인공이라니! 보통 히어로 무비의 여성 캐릭터들은 몸매를 강조하는 의상을 입고 섹시함을 무기로 내세울 때가 많다. 그러나 예고편으로 드러난 영화 속 브리 라슨의 모습은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강인한 전사에 가까웠다. 무표정한 얼굴도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웃지 않는 여성 히어로에 대한 조롱 섞인 글이 올라왔고 이에 브리 라슨은 <아이언 맨>과 <캡틴 아메리카> 등 남성 히어로물의 포스터 속 주인공들의 심각한 얼굴 표정을 웃는 모습으로 바꾼 사진을 올려 재치있게, 하지만 단호하게 대응했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네이버영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스트 버스터즈> 속편과 <오션스 에이트>가 나왔을 때도 일부 남성들의 조롱 섞인 비난 글이 많이 올라왔다. 여성 중심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되는데 사실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추측해보면 여성이 중심에 서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짜증, 신경질이 아닐까. 페미니즘과 연관시켜 여자들이 이상한(?) 사상을 믿고 설쳐대는 모습을 못 보겠다는 반응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여성 서사 중심의 영화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알탕영화’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장한 표정의 남성들이 잔뜩 나오는 형식이 영화계의 주류로 자리잡은 지 꽤 오래 되었고, 여성 영화를 주제로 한 영화프로그램에도 대부분의 패널들이 남자인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영화계도, 예능도, 그리고 지금 사회도 충분히 남성 중심적이다. 정말로 간간이 나오는 여성 중심의 영화에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도 단단히 한몫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어떤 글을 봤다.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방이 페미니스트 같아 기분 나빠서 그 전에 선물로 준 1200원짜리 음료 기프티콘을 돌려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돈 자체가 아까운 건 아니고 페미니스트한테는 잔돈 한 푼도 주기 아깝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많은 남성들이 여러 각도에서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이렇듯 남자들이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어도 감염병 대하듯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이 과연 무엇이기에 그렇게 싫어하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올바른 대답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그들에게 사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싫을 뿐이다.

이러한 남성들의 비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캡틴 마블>은 우리나라에서 관객 수 500만명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 중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각턱에 못(?)생긴 여자주인공이라 놀림 받던 브리 라슨이 내 눈에는 아주 예뻤고, 때때로 귀여웠으며, 결정적으로 아주 멋졌다. <캡틴 마블>은 재미있었고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마블 최초 여성 히어로무비의 주인공이면서 그 어떤 남성 히어로보다 강력한 파워를 지녔다는 점에서. 또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변인물들이 둘 다 여성이라는 점. (한명은 백인, 또 다른 한명은 흑인 여성이다.) 그를 조력하는 한명의 남성 역시 흑인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잔인한 악당 역을 하는 흉측한(?) 모습의 외계인이 사실은 핍박받는 소수 민족이라는 설정과 정의로워 보이는 백인 남성 캐릭터가 실체를 드러내고 캡틴 마블에게 처절하게 패한 후, 찌질한 모습으로 퇴장할 때의 쾌감도 꽤 쏠쏠했다.

물론 주류 백인 남성은 악이고 흑인, 여성, 소수자들이 선이라는 것은 아니다. 주류 남성들을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백인들을 몰아내고 흑인들만의 세상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노예의 후손과 노예 주인의 후손이 형제애라는 식탁 앞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꿈’을 꿨을 뿐이다. 지금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이민자들과 소수자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백인 남성 중심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보며 원래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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